20·30대에 대해 기성세대가 하는 말처럼 진부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이 말만은 꼭 하고 싶다.

천문학적 대북(對北) 송전(送電)과 경수로 비용 떠안기, 빚더미 들고 오는 큰 정부, 세금 융단폭격, 사법부에까지 번진 ‘과거 청산’, 사립학교 장악 음모 등 근래 일련의 변란(變亂)적 사태를 오늘의 젊은 세대가 과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들의 시각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기에 그렇다.
오늘의 20대는 자유, 개성, 탈(脫)이념, 감성, 디지털, 문화 취향, 기호주의 등의 말들로 설명되곤 한다.

특히 자유와 개성은 얼마나 신나는 코드인가. 그러나 다만 한 가지 지적해둘 것이 있다. 잘못하다가는 자유·개성 세대인 그들이 그것과는 거리가 먼 획일주의·전체주의 세력의 선전선동에 휩쓸릴 수도 있는 역설(逆說)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유 세대임에도 2002년에 이미 월드컵과 ‘촛불’을 계기로 반(反)자유주의 세력에 힘을 몰아준 전력이 있다. 그들은 나이 많고, 권위적이며, 엘리트적이고, 규격품 같은 기성세대와 기성체제가 무조건 싫었던 까닭이다.

그런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따귀를 보기 좋게 후려친 데서 그들은 일종의 혁명적 파괴의 쾌감을 만끽했을 것이다.

변화를 위해 기성권위를 그렇게 한 번 뒤흔든 것까지는 어쨌든 헤아릴 만했다고 하자.

그러나 그들의 힘을 업고 들어선 386정권은 과연 자유세대의 취향에 부합하는 길로 갔던가? 필자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386 세력은 20대의 자유·개성·탈이념의 취향과는 반대되는 집체(集體)주의, 국가통제, 큰 정부, 공무원 늘리기, 세금 쥐어짜기, 낭비적 국책사업, 반(反)경쟁, 반(反)시장주의, 반(反)민영화, 반(反)실용주의, 반(反)개방의 구식 좌파의 길로 가고 있다.

그 탓으로 그들은 성장 잠재력을 기죽이면서까지 ‘빚 얻어 생색내는’ 적자(赤字) 포퓰리즘으로 질주하고 있지 않은가?

말인즉 좋다. 과거청산, 빈부격차 해소, 환경보존, 참교육, 북한주민 돕기…. 누가 이런 말들 자체를 나쁘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과거 청산을 악용한 표적 숙청, 성장을 무시한 분배, ‘단식’에 휘둘려 2조6000억원을 날린 천성산 터널 백지화, 집 한 채 가진 것만으로도 죄(罪)인 양 세금 벼락 때리기, 교육의 하향 평준화와 사립학교 빼앗기, 그리고 국민에게 단 한 마디 의논도 없이 총 25조원의 부담을 떠넘기면서 폭정(暴政) 세력에 전략물자인 전기를 대주려는 김정일 살리기-이런 것들이 과연 그것을 위한 적절한 방법인지는 오늘의 젊은 세대가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니까 지금의 구(舊)좌파 대신 옛날의 구(舊)우파를 복제(複製)하라”는 뜻으로 ‘구좌파의 실패’를 열거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강조하는 것은 구좌파의 막무가내식 ‘문화혁명’이 이 나라를 장차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를 젊은이들이 이제는 구좌파의 눈도, 구우파의 눈도 아닌, 자기 자신의 눈으로 냉철하게 관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구좌파도 구우파도 아닌 자유세대의 눈―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자유 또는 자유주의의 눈이다. 자유주의만으로 부족하다면 ‘공동체 자유주의’라 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이제는 자유세대가 구우파뿐 아니라, 구좌파로부터도 과감한 이탈을 선언해야 할 때란 점이다.

자유세대는 무엇보다도 386식 현대사 왜곡의 최면술에서 해방돼야 한다. 그리고 물어야 한다.

분단 책임은 남쪽과 미국에만 있었는가, ‘강정구 식’으로 남쪽까지 김일성·김정일 세상이 됐어야 오늘의 20대에게 더 좋았겠는가, 남쪽에 파견된 북의 간첩(장기수)을 ‘애국열사’라고 부르는 세상이 아무렇지도 않은가, 북쪽이 탈북여성에게 몽둥이질을 하고 위조달러를 만들고 마약을 밀수출하는 것도 다 ‘민족자주’를 위해서 하는 일이니 눈감아줘야 하는가, 민족주의가 그런 반(反)인류적 범죄의 면죄부인가?

그 대답이 “아니다”라면 지금이야말로 자유세대가 반동적 ‘남·북 수구좌파’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자유주의 청년·학생운동의 출정을 결단할 때일 것이다. 한반도의 진정한 ‘진보’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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