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제4차 6자회담이 일단 성공적으로 끝났다. 북한은 베이징 공동성명으로 바라던 경제회생과 체제안정의 실질적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공동선언문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침략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함으로써 체제안정을 다자적(多者的)으로 약속하였을 뿐 아니라, 6자간 경제협력 확대를 통한 경제회복의 길을 열어주었다.

북한 경제의 재건은 사실상 외부 지원에 달려있다. 북한은 1990년대 들어 생산기반을 상실하여 자체능력으로는 저축이나 성장이 불가능한 소위 ‘빈곤 함정’에 빠져 있다.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 1999년도 이래 지속되고 있는 북한 경제의 플러스 성장도 외부의 자원 유입에 따른 단기적 효과에 불과하다.

북한이 본격적인 성장 궤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에너지원(源)의 확보, 생산설비 확충, 교역시장의 확대가 필수적 전제이다. 6자회담은 이러한 북한 경제의 가장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 구조적인 해결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북한 경제의 아킬레스건(腱)이라고 할 수 있는 에너지 부족의 문제는 일단 한국의 전력 공급으로 한숨 돌리게 되었다. 우리 정부가 지난 7월 제시한‘대담한 제안’에 따라 200만㎾의 전력이 공급되면 당분간 북한의 전력부족분을 대부분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200만㎾의 전력을 공급하더라도 생산설비의 확충을 위한 자본이 문제이다. 기존의 생산설비는 경제성이 떨어져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무상으로 혹은 가장 저렴한 조건으로 양허성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은 IMF·IBRD·ADB 등 국제금융기구이다. 이 기구들의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국가가 미국과 일본이다.

따라서 6자회담 참여국들이 협력할 경우 북한의 국제공적자금 활용 가능성도 높아지게 되었다.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추진에 따라 80억달러 정도로 예상되는 일제 강점기 배상금 유입에 대한 기대도 가능하게 한다.

국제 사회의 체계적인 대북 지원을 위해서는 우리가 주도해서 6자회담 참가국으로 구성되는 대북경제지원협의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무기 포기 선언을 현실화시킬 경우 교역시장의 확대도 이루어질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 포기는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북한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산업설비를 수입하고 수출시장에서 최혜국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번 6자회담의 합의로 북한은 지난 1990년대 이래로 겪어온 경제위기에서 탈출하고 국제사회에 정상적인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맞게 되었다.

북한이 이 기회를 활용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후속 회담들에서 취할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 이번 공동선언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많은 실무 차원의 협상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북한이 얼마나 성실하게 합의한 내용들을 상호 기대하는 바대로 실천하는가가 이번 합의의 실질적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북한이 지금까지 취해온 대내(對內) 정책의 상당부분을 수정해야 하며 외부의 영향력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하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에 이번 공동선언의 실천이 용이한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6자회담에 참여한 어떤 국가에도 이번 합의의 실행이 손쉬운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합의의 실행 과정에서 신뢰를 무너뜨리게 되면 더 이상 6자회담의 틀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다.

어렵사리 도달한 이번 베이징 공동성명은 동아시아를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로 전환하는 원칙 선언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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