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이·문화부장

140여석 작은 영화관에는 둘씩 둘씩 짝지어 앉은 관객이 단 넷이었다. 텅 비다시피 한 객석은 아랑곳없이 화면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영국의 젊은 다큐멘터리 감독이 만든 ‘어떤 나라’(A State of Mind)다.

2003년 2월. 평양의 한 경기장 앞 옥외에서 집단체조(매스게임) 연습이 한창이다. 주인공은 열세 살 소녀 현순이. 순박한 미소를 얼굴 가득 담은 현순이는 ‘장군님’ 앞에서 자기 실력을 뽐내고 싶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순간 화면이 바뀌면서, 소녀들이 휙휙 재주를 넘기 시작했다. 2월의 평양 거리에서, 맨손이다. 땅을 짚고 두 바퀴를 잇달아 넘는데,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줄 하나 틀리지 않고 마치 자동기계가 돌아가듯 똑같다.

북한이 자랑하는 집단체조 ‘아리랑’의 연습 과정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지난달 말 서울 ‘하이퍼텍나다’ 극장 단 한 곳에서 개봉했다.

‘아리랑’에 참여하는 열한 살, 열세 살 두 소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다큐멘터리는 집단체조의 물샐틈 없는 ‘집체성(集體性)’에 진저리치는 관객에게는 반공(反共) 영화와 다름없을 터이지만, 딸 생일에 옥수수죽을 끓여주었다는 김일성대학 교수 부인의 회고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휴먼 드라마다.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에 이런 고난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비난하는 모습에 ‘반미(反美) 영화’라는 혐의를 씌우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정치적 관점을 가졌든, 이 영화가 분명하게 전하는 모습이 있다. “핵무기를 가졌다”고 선언했던 2003년 평양의 긴장, 집체예술 ‘아리랑’의 어마어마한 규모 뒤에 숨은 북한의 전체주의와 북한 사람들의 삶이다.

북한이 최근 남쪽을 향해 집단체조 ‘아리랑’을 보러오라고 제안했다. 당장 오늘부터 1박2일 방북단(訪北團)이 출발한다고 한다.

이미 보고온 남쪽 사람들도 적잖다. 얼마 전 평양서 이 공연을 본 남북여성통일 연단(소규모 학술대회) 방북팀은 “개인이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기분. 씁쓸” “수많은 사람이 하나의 마음으로 단결해 훌륭한 작품 탄생. 감동 눈물”(여성신문) 두 갈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어떤 나라’는 10만명이 등장하는 ‘아리랑’ 공연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난다. 무대에서 꽃이 피고 파도가 일렁이는 대장관(大壯觀)이 펼쳐지는 동안 카드섹션은 또 천리마가 날고, 태양이 떠오른다.

카드섹션 멤버인 더벅머리 소년은, 혹시라도 실수할까 필사적으로 빨강 파랑 카드섹션 책장을 넘긴다. ‘어떤 나라’의 감독은 “이 집단체조야말로 한 개인이 전체를 이루는 데 참여하는 완벽한 공산주의”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그 ‘완벽한 공산주의’와 ‘집체 예술’을 간접적으로 접하며, 잊고 지낸 10대 시절을 떠올렸다.

유신체제의 극성기였던 그때, 중·고등학생들은 으레 전국체전 매스게임에 ‘동원’됐다. 카드섹션으로 이름난 여고에 다니던 한 친구는 뙤약볕 아래 카드를 열었다 닫았다 연습하며 자신이 ‘사물’로 전락했다는 것을 실감했고, 그 순간 맹렬한 살의(殺意)를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때 그 매스게임의 전체주의를 비판했던 우리가 지금 북한 10만명의 집단체조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 다큐 영화는 30일 끝난다. 그나마 아침 10시 반 1회 상영뿐이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무어라고 읽어내든 좋다. 시청료에 국고 보조까지 받는 공영방송에서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아리랑’을 보러 수많은 사람이 돈 들여 평양으로 떠나는 마당에, 또 남북 문제에 관한 영화 담론이 ‘웰컴투 동막골’류의 우화(寓話)로 머물고 있는 현실에, ‘어떤 나라’가 던지는 수백 개의 질문은 분명 유효한 논쟁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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