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닉쉬·미국 의회조사국 선임연구원

지난 19일 발표된 6자회담 합의문에는 긍정적인 조항과 부정적인 조항, 의미가 모호한 조항들이 다 들어 있다. ‘좋은 소식’은 6자회담이 아마도 1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몇 차례 더 열릴 것이란 부분이다.

‘나쁜 소식’은 합의문이 한·미-북한 간의 핵심 갈등 사안을 해결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4년 9월 북한이 미국의 적대적인 대북 정책과 핵 위협을 끝내지 않는 한, 6자회담에 불응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1년 넘게 끌어온 북핵 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교착 상태는 변한 게 없다.

선언문에서 빠진 핵심 문제는 북한의 핵프로그램 해체 시기에 관한 것이다. 이에 관한 미·북 간의 큰 간극은 선언문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부시 행정부는 2004년 6월 제안에서 북한의 핵 폐기는 합의문에 서명이 있은 후 몇 달 내에 이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관리들은 북핵 폐기 과정을 3년 정도로 추산했다.

이제 부시 행정부는 한국이 대북 전력 공급기반을 구축하는 것과 시간적으로 연계시켜 북핵 폐기 과정을 진행시키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한국 관리들에 따르면 이 과정 역시 약 3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북한의 핵 폐기가 완결될 시점에야 한국의 전력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 7~8월 회담에서 한국의 전력 지원과 북핵 폐기를 연계하는 것을 거부했다.

회담 내내 북한은 북핵 해결 과정의 초기·중간 단계에서 핵프로그램 폐기를 상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 대신 미·일이 북한에 일련의 혜택과 원조를 제공하는 긴 과정의 말미에 가서야 핵 폐기가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지난해 북한은 핵 폐기에 대한 보상을 말하면서 ‘(동북아) 지역 비핵화(非核化)’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경제적 보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군사적 양보까지 포함시켰다.

이어 최근 두 차례의 6자회담에서 북한은 미국측에 경수로를 요구했다. 경수로를 요구한 이유는, 북한의 핵 폐기는 경수로를 실제 보유한 이후에야 진행될 것이라는 선언에 들어있다.

부시 행정부가 북핵 폐기의 시간표를 3년으로 잡고 있는 데 반해, 북한은 경수로 건설이 진행되는 최소 10년간은 핵폐기 요구를 거부할 것이다.

10년 혹은 15년, 심지어 20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기간을 둔 북한의 핵 폐기 가능성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가.

북한은 이번 합의문에서 핵확산방지조약(NPT)에 재가입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가지고, 미국에 대해 그 대가로 자신들에게 경수로 제공을 보장하는 보증서와 맞바꾸려 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경수로를 보유하기 전까지는 핵 폐기를 거부할 것이다. 북한은 경수로와 NPT를 연계시킨 보상책이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아마도 한국에까지 호감을 살 것이라고 계산한 듯하다.

북한은 이번 제안을 6자회담에서 미국을 고립시키고 수세에 몰리도록 만드는 데 활용할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전술을 바꾸면서, 한·미 정부는 몇 가지 도전에 직면했다. 우선 그동안 평행선을 그었던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 있어서, 이제 마련된 비핵화 합의 내용과 한국의 대북 전력지원에 대한 구체적 이행절차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 다음 이 같은 단계적인 절차를 중국 역시 받아들이도록 강하게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번 6자회담 합의문 작성 과정에서 중국은 부시 행정부에 대해 경수로 제공 문구를 포함시키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엔 반대로 중국에 그 정도의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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