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위크는 최근 장쩌민(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아시아 지도자들을 제치고 올해 ‘아시아 파워 50인’ 중 1위로 홍콩 청콩(장강)그룹의 리카싱(이가성·이가성·72) 회장을 선정했다. 우리로 말하면 현대그룹의 정주영(정주영·85) 명예회장 같은 인물이다.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별명부터 그렇다. 리카싱은 ‘초인(초인·superman)’, 정 회장은 ‘왕(왕)회장’. 정 회장이 국졸(국졸) 학력에 자수성가했듯, 리카싱도 초등학교 졸업 후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가 세계적인 부자가 됐다.

정 회장의 고향은 북한 강원도 통천. 리카싱은 중국 본토 광둥(광동·광동)성 차오저우(조주·조주) 출신. 정 회장이 남·북한 경협의 물꼬를 트며 북한 지도자들로부터 신뢰를 받고있는 한국 기업인이라면, 리카싱은 중국 지도부로부터 ‘가장 애국적인 기업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지난 1979년 덩샤오핑(등소평)이 개방노선으로 선회했을 때 전세계 화상(화상) 중 가장 먼저 달려가 투자를 시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 다 하는 사업마다 승승장구하며 실패를 몰랐던, 대단한 능력과 행운을 지닌 경영인이라는 점에서도 비슷하고 문어발식 경영 스타일도 막상막하다. 정 회장이 건설에서부터 무역 자동차 조선 해운 기계 전자 석유 금융 유통업에 이르기까지 전천후 기업왕국을 건설했다면 리카싱도 건설, 부동산에서부터 무역 항만 해운 통신 전력 석유 금융 유통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손을 대고 있다. 오죽하면 “홍콩에서 쓰는 1달러 중 5센트는 리카싱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말까지 있을까.

그러나 다른 점도 많다. 정 회장이 특유의 보스 기질과 카리스마로 “나를 따르라”는 식의 장군형(장군형) 사업가라면, 리카싱은 겸손한 처신에 빈틈없이 계산하고 결정하는 사업가다. 정 회장의 끝없는 의욕과 자신감이 많은 화제도 불러일으켰고 끝내 대통령직 도전이라는 무리수도 던지게 했다면, 리카싱은 중국인 특유의 절제와 인내를 통한 ‘외곬 경영’으로 70대 나이인데도 사업을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그를 ‘아시아 파워 1위’로 선정한 아시아위크는 “오랜 기간 구경제(구경제·건설·해운 등)를 주도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신경제(정보통신)에도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은 계열사 경영스타일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정 회장은 과거 거의 모든 방계기업에 대해 전단적(전단적) 권한을 행사했다. 오너의 지시 한 마디로 사장, 이사, 부장까지 일사천리로 교체됐고, 중요한 사안일수록 오너 한마디에 의해 결정됐다. 이는 물론 정 회장뿐 아니라 한국 대기업 총수들의 일반적 관행이다.

반면 리카싱은 자기가 소유한 주식 지분만큼만 권한을 행사한다. 물론 리카싱측이 30~40%의 주식을 소유한 대주주라 입김이 가장 세지만, 항상 주주총회와 이사회 등의 정상적 절차를 받는다. 때문에 경영실적이 나쁘지 않는 한 계열사 사장이나 간부의 목을 함부로 자를 수 없다. 그럴 경우 주주나 이사들이 가만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홍콩 대기업들의 일반적 풍토다.

결과적으로 리카싱을 비롯 홍콩의 재벌들은 한국 재벌들처럼 비판을 받지 않는다. 한국 재벌에 대해 혹독한 외국 언론들도 리카싱 기업 왕국을 문어발 경영이라고 깎아 내리지 않는다. 시민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계열사 각 기업들이 제각기 독립적 경영활동을 하고 있으며 리카싱은 소유한 주식만큼만 정상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처럼 ‘왕자(왕자)의 난’이 일어나거나, 왕 회장의 한마디로 사태가 수습되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홍콩에선 보기 어렵다. 아시아위크는 또 리카싱에 대해 “아시아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사업을 벌이는 글로벌 정신을 높이 샀다”고 했다. 리카싱은 영국, 독일, 캐나다, 미국, 아프리카 등지에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심지어 그 유명한 파나마 운하도 그의 계열사가 운영한다. 정규 학력 소유자도 아닌 리카싱이 이렇게 외국 기업들을 성공적으로 경영하는 비결은 알고 보면 별게 아니다.

외국의 좋은 기업을 인수한 뒤 경영진이나 풍토를 되도록 그대로 두고 독립운영케 한다. 그룹 총수는 주요 전략이나 계획만 관여할 뿐 모든 것은 경영실적을 놓고 따질 뿐이다. 아무리 처세가 좋은 사장(CEO)이라도 경영실적이 나쁘면 해고당할 뿐이다.

3년 전 리카싱을 취재하기 위해 청콩그룹의 문을 두드렸을 때 이 큰 기업에 홍보실은 물론 홍보전담직원조차 없다는 데 놀랐다. 그룹 관계자는 “회장 관련 취재협조는 회장비서실 직원이, 회사 홍보는 필요한 경우 홍보대행회사에 맡기면 되기 때문에 홍보실을 두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업가는 경영실적으로 말하면 되지 굳이 언론을 통해 말할 게 없다”며 취재협조 자체를 거절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로 리카싱이 선정된 것은 결코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었다.

/홍콩=함영준특파원 yjhah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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