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문제 합의와 파기를 보도한 조선일보 1면 기사들







제4차 6자회담 공동성명의 핵심은 북한의 핵 포기를 규정한 제1항에 담겨 있다. 그러나 1항은 구체적 사항에 대한 합의라기보다는 정치적 선언 성격이 짙다. 핵무기와 핵프로그램 포기의 의미와 절차, 그에 따른 검증의 절차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공동성명이 북핵위기 과정에서 나온 합의문 중 가장 의미있는 것임을 평가하면서도 이 문제 때문에 합의의 장래를 전적으로 낙관하지는 못하고 있다.

◆ 순서·절차 난관

당장 북한에 줄 경수로를 논의할 ‘적절한 시기’가 언제인지에 대해 구체적 합의가 없다. 이미 북한과 나머지 5개국의 의견이 맞서고 있다. 북한이 핵 포기를 언제 어떻게 하고, 그것의 검증은 언제 어떻게 하며, 미국과 나머지 국가들이 그에 대한 보상은 또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가 모두 미정이다. 무엇을 먼저 하느냐는 선후관계도 없다.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지 북한 핵을 언제 동결할 것이냐에 대한 언급도 없다.

구체적으로 북핵 폐기와 미·북 관계 정상화에는 에너지·전력 지원 수교 협상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국제원자력기구(IAEA) 복귀 경수로 제공 논의 북한 내 핵시설 검증 평화협정체제 협상 영변 원자로 처리 등 수십 가지 복잡한 요소들이 놓여 있다.


◇6자회담에 참가하는 6개국 수석 대표들이 단합을 과시하듯 서로 맞잡은 손 모습. 이들은 19일 북한의 핵 포기 등 6개항 합의가 담긴 공동성명을 채택했다./베이징=연합

◆ 검증 가능한 비핵화

북한이 NPT나 IAEA 안전협정에 복귀하면 당장 부딪칠 문제가 검증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투명한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6자회담의 목표가…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합의한 것은 상당한 진전이다. 미국과 북한은 94년 제네바 합의 이후에도 검증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놓고 부딪쳐 왔다.

NPT 사찰에는 정기적인 사찰 외에 불시 사찰도 있다. 만약 북한이 NPT 복귀 후 의심스러운 시설에 대한 검증을 모두 허용할 경우 북한의 핵 투명성은 국제적으로 공인받게 된다. 미국도 더 이상 북한에 대해 핵문제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 미·북간 현안을 풀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검증의 시기·절차·방법·주체 등은 항상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는 문제들이다.

◆ 모든 핵 포기

북한이 핵 무기는 물론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기로 한 것은 성과다. ‘모든 핵무기’란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 폭탄뿐만이 아니라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폭탄까지 포함하는 표현이다. 2003년에 시작된 이번 2차 핵위기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의 존재를 미국에 시인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은 북한이 플루토늄을 추출한 영변 원자로 외에 북한이 추가로 건설 중인 원자로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현재 있는 프로그램과 검증을 연결시켜 본다면 결국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핵 관련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핵‘폐기(dismantle)’가 아니라 ‘포기’(abandon)로 표현한 것도 눈길을 끈다.

◆ 동북아 새 질서 계기?

이번 합의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많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이번 합의에 대해 “동북아의 새로운 국제정치 질서가 수립되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공동성명 내용처럼 남·북·미·중이 평화체제를 수립한다면 냉전체제의 산물로 표현돼온 한반도의 기존 질서와 구도는 일대 전환이 불가피하다.

미국이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로도 북한을 공격·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약속을 국제적 문서로서 북한에 약속한 것 또한 이례적이다. 북한으로선 대미 정책을 바꿀 의지가 있다면 이번 계기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실행 계획을 협상해가는 과정에서 논란이 생기면 이번 합의문 정신에 기초해서 문제를 풀게 된다./ 베이징=권대열기자 dy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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