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2단계 제4차 6자회담의 공동성명을 통해 한반도의 냉전질서는 평화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질서로 변화하는 출발선에 다시 서게 됐다.

그동안 북.미 간에는 1994년 기본합의문으로, 북.일 간에는 2002년 평양선언으로, 그리고 1990년대 중반에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으로 새로운 질서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이뤄졌지만 이행노력이 이어지지 못하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 성명은 이른바 `북 핵문제'를 해결하는 문건이라는 점에서 1994년 제네바 합의와 유사하지만 냉전구도 해체의 최대 걸림돌로 지목돼 왔던 `북 핵문제'의 해결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구축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문에 90년대 중반의 4자회담을 더한 모양새를 갖춰 새로운 질서 구축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6.25전쟁에서 시작된 한반도 대결구도는 한.미.일 남방 3각동맹과 북.중.러 북방 3각동맹의 대립으로 나타났고 1990년대 국제사회의 탈냉전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 잔존하고 있는 대립구도는 북.미, 북.일 간 대립.

이번 공동성명에서 북한과 미국은 상호주권 존중과 평화공존을 약속하고 관계정상화 조치를 취하기로 했고 북.일 양측도 관계정상화를 향해 가기로 합의했다.

이 같은 조치가 현실화되면 한반도에 존재하는 대립축을 허물어 기존의 질서를 바꾸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이번 6자회담에서 6.25전쟁과 이 전쟁의 유산인 정전체제를 바꾸기 위한 논의를 시작키로 한 것 역시 변화의 출발점이 될 전망이다.

공동성명은 "6자는 동북아에서 평화와 안정을 지속시키기 위한 공동노력을 다짐했다"며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고 명문화했다.

이미 1990년대 중반 남북한과 중국, 미국이 참가하는 4자회담 틀을 통해 한반도 평화문제를 논의했던 만큼 다시 이 틀을 살려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을 위한 협의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이같은 합의가 북한의 핵문제 등으로 번번이 좌절 됐다는 점에서 북핵문제 해결과 조합된 이번 공동성명은 이행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평화체제 논의가 본격화되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가 집중적으로 협의될 것으로 보여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논의는 불가침 협정의 성격이 강한 평화협정 체결로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평화체제 구축 논의는 그동안 한반도를 틀 지워온 각종 안보질서에도 변화를 미칠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변화되면 우선 평화체제의 관리주체가 변화돼야 한다. 현재 정전체제의 관리자인 유엔군사령부는 자동적으로 해체될 것으로 보이며 이를 대체하기 위해 '평화유지군'이나 '유엔군 및 감시단'이 한반도 평화상태를 관리할 개연성이 높다.

유엔사 해체는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 약화로 이어져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뒤따를 것으로 보이지만 주한미군의 주둔 배경의 하나가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라는 점에서 어떤 접합점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 북한도 1992년 김용순 당비서의 미국 방문과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 대신 동북아 평화유지군으로의 성격전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또 북한이 을지포커스렌즈(UFL) 한.미 합동군사연습에 대해 반발하면서 6자회담까지 연기했다는 점에서 한.미 간의 군사동맹문제나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정책 등 미국의 전반적인 동북아 군사전략도 논의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이번 합의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의 출발점으로서 의미가 크다"며 "하지만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고 난관도 많을 것인 만큼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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