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요구로 보도문에 “체면주의 버리자”
국보법 등을 南의 체면주의로 몰려는듯


제16차 남북장관급회담 공동보도문에 ‘체면주의’라는 생소한 용어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남북이 ‘남북관계에서 일체 체면주의를 버리고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도모해 나가기로’ 합의한 것이다.

남북회담 경험이 많은 통일부 관계자들도 체면주의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북한에서도 체면이란 말은 많이 쓰지만 체면주의란 말은 안 쓰고 사전에도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북측이 이번 회담 들어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회담 첫 날인 13일 환영 만찬에서 박봉주 북한 내각 총리가 “이제는 북남 쌍방이 사상과 제도의 차이에 구속된 체면주의를 버리고 대결의 마지막 장벽을 넘을 때”라고 말해 처음 사용했다.

◇16일 오전 평양 고려호텔에서 제16차 남북장관급회담을 가진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북한 권호웅 내각책임참사가 공동발표문을 발표하기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후 북측 권호웅 단장이 14일 기조발언에서 다시 사용하는 등 북측 관계자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이 표현을 썼다.

권 단장은 “북남 사이에는 아직도 상대방을 부정하고 적대시 하면서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절대화하는 체면주의가 남아 있다”며 “남측 당국도 보안법 같은 상대방 존재를 부정하는 구시대적 법률과 제도를 철폐할 용단을 내려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지난 8·15행사 때 국립현충원을 방문한 것은 이런 근본 문제를 해결하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현충원 참배에 대한 상응조치도 은근히 주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회담 관계자는 “북측이 이 말을 넣자고 했는데, 우리가 평소 북측에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라 ‘실용주의’를 추가해 뜻을 명확히 해서 넣었다”며 “체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남북관계를 그르친 사례는 북한이 휠씬 많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번 회담에서도 북측은 국보법 폐지와 한·미 합동군사훈련 폐지 등 정치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하자고 주장해 합의에 난항을 겪었다. 이에 따라 공동보도문에는 현재 진행 중인 남북 관계 일정을 몇 개 잡고 일부 선언적인 문구를 넣는 데 그쳤다.

정동영 장관은 “6·17 면담 때 김정일 위원장이 ‘겉치레 체면보다 실질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했는데 거기서 나온 개념인 것 같다”고 말했다. 통일부 해설자료는 이를 ‘형식주의’라고 표기했다. /김민철기자 mc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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