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가 15일 수석대표 회담을 위해 베이징의 숙소를 떠나고 있다./AP=연합

오로지 경수로만 주장… 美는 일축

“잘 되는 쪽 신호는 하나도 없다. 어찌 보면 오히려 뒤로 후퇴했다.” 베이징 북핵 6자회담이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15일에도 경수로 건설 요구를 계속했다. 회담 관계자는 “시계(視界)가 불투명하다” “희망이 절벽이다”고 말했다.

북한 대표단의 현학봉 대변인은 이날 회담 뒤 댜오위타이(釣魚臺)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우리 입장은 흑연감속로 체계를 포기하는 대신 우리에게 경수로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동안 문제가 됐던 영변 원자로가 흑연감속로 체계다. 북한이 공개적으로 ‘6자회담 참가국들이 경수로를 북한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처음이다.

현 대변인은 “다른 참가국들은 이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이해를 표시했지만 미국은 무작정 경수로를 못 주겠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책임을 미국에게 넘기려는 의도로 보인다.

미국측 크리스토퍼 힐 대표는 북한이 경수로 건설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할 제안(nonstarter)”이라고 했다.

nonstarter는 ‘경마에서 출발 총성이 울렸는데도 달리지 않는 말’에서 유래한 단어다. 그는 “북한에 안전보장, 체제보장, 국제기구의 금융지원, 대단히 유용한 에너지 지원책을 내놓았는데 이건 보지 않고 엉뚱한 것을 테이블에 내놓고 있다”고 했다.

미국과 일본 본국 정부에선 “경수로는 우라늄 농축이 필요하고 그것은 폭탄 제조로 이어진다” “북한은 평화적 이용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강경론이 머리를 들고 있다.

이대로 4차 2단계 회담도 결실 없이 끝날 경우, 6자회담을 통한 북핵 해결 자체에 회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일각에선 6자회담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 대표단은 지난 회담부터 “힐 다음에 기다리는 사람은 존 볼턴”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 네오콘 중에도 가장 강경파다. 유엔 대사로 안전보장이사회 업무도 총괄한다.

그러나 “회담을 빨리 끝내자”던 중국이 휴회(休會) 이야기를 접었다. 누구든 “그만 하자”는 말을 하는 순간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베이징=권대열기자 dy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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