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대중 Dailynk 논설위원

가족끼리 기업을 승계하는 것을 필자는 부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비슷한 능력을 가진 후보군(群) 가운데 한 명을 꼽는다면 누구든 혈육에 당길 것이다.

기업을 가산(家産)으로 여기며 보다 책임감을 갖고 기업을 이끌 것이라는 상식적인 판단 때문이다. 현정은씨가 현대그룹을 이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필자는 반신반의했다.

단순히 여자라서가 아니다. 故정몽헌 회장의 부인이기에 그랬다.

현정은 편지 수취인은 '김정일'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기업활동이 이데올로기나 감정에 휩쓸리면 무너지는 것은 단숨이다. 현대의 대북사업은 북녘에 고향을 둔 故정주영 회장의 개인적 보람에서 시작되어, 점차 ‘그만두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으로 변질됐다.

남북 정권은 각기 이것을 이용했다. 정몽헌 회장은 그 틈바구니에서 끝내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

현회장이 필요할 땐 결단도 내릴 줄 아는 냉철한 기업인이 아니라 어떻게든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보겠다는 애절한 감정을 가슴 깊은 곳에 담고 대북사업에 임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겠다고 우려했다.

분명한 이성을 갖고 덤벼도 부족한 북한과의 협상과 거래에 그런 감정적 요소가 끼어들게 되면 여지없이 북한정권의 꾀임과 협박, 술수에 넘어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현회장이 딸을 대동하고 김정일을 만났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또 하나의 희생양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지금껏 현회장은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을 무난히 잘 이끌어왔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다 김윤규 부회장에 대한 징계성 인사로 촉발된 북측과의 갈등으로 인해 현회장은 시험대에 올랐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객 수를 절반으로 줄였고, 현회장은 북한으로부터 이런저런 홀대를 받아왔다.

북한은 과연 김윤규 회장이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런 일련의 조치들을 취한 것일까?

북한 역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대북사업의 지휘권을 쥐게 된 현회장을 길들이고, 향후 대북사업에서 더 큰 이득을 챙기기 위한 ‘딴죽걸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의외로 길게, 그리고 강하게 나오고 있다. 이때, 현회장이 칼을 빼들었다.

현회장은 12일 ‘국민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윤규 회장 징계를 “대북사업의 미래를 위한 읍참마속의 결단이었다”고 하면서 “대북사업을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의 기로에 선 듯하다”고까지 말했다.

현회장 편지의 수취인은 사실 ‘국민 여러분’이 아니라 ‘김정일’이다.

정면으로 한번 붙어보자는 선언이다.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 강한 의지로 돌파해야이 게임의 결과가 어떻게 될까?

필자는 현회장 쪽에 70% 이상의 승률을 걸고 싶다.

물론 현대그룹으로서도 기회비용을 생각지 않을 수 없어 사태가 장기화되면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지만,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인해 아쉬운 쪽은 역시 김정일이다.

금강산은 무시할 수 없는 현금창고이기 때문이다. 지금쯤 김정일은 ‘통 크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모양새를 꾸미느라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현회장을 부르고, 전격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은 ‘여자라고 우습게 보았다가 큰 코 다쳤다’는 값진 교훈을 하나 얻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현회장은 ‘이길 수 밖에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관건은 현회장의 강한 의지에 달렸다. 해결의 능선을 넘을 때까지 북한은 간헐적으로 태클을 걸어올 것이다.

오늘만 해도 북한이 롯데관광에 개성관광사업을 제의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북한의 상투적인 수법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상대가 시비를 걸수록 배수진을 치고 ‘아쉬운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라는 식으로 나가야 김정일과의 승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지금 남한 국민들은 현회장이 김정일에게 선언한 정면승부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북한 인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디 이번에는 그 동안 거품이 많았던 김정일의 기세를 꺾고 ‘정직한 양심과 열정’의 승리를 보여주기 바란다.

현회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 이 글은 ‘시사웹진 뉴라이트’(www.new-right.com)의 양해를 구해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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