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회장이 12일 ‘국민 여러분께 올리는 글’을 통해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을 對北대북 사업에 복귀시키라는 북한의 요구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이제 저는 대북 사업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선 듯하다”고 말했다.

북한은 현대가 김 부회장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한 이후 금강산 관광객 수용 숫자를 줄이고 개성·백두산 관광 협상을 거부하는 등의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현 회장의 금강산 방문 때는 그의 핸드백까지 열어보는 수모를 주었다.

이런 북한을 향해 현 회장은 “비굴한 이익보다 정직한 良心양심을 택하겠다”고 했다.

현 회장의 태도는 대북 경협 당사자로 나섰던 남편인 鄭 前회장이 목숨을 끊어야 했고 한때 회사마저 存廢존폐의 위기에 몰렸던 처지로 보면 당연한 선택이지만, 이런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처리해 오지 못했던 남북관계의 현실로 보면 하나의 사건이다.

2000년 장충식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인터뷰에서 “北북에는 자유가 없다”는 발언을 했다가 북한의 압력으로 사임했다.

그 이듬해에는 홍순영 통일부 장관이 남북 장관급 회담이 결렬된 후 10여 차례에 걸친 북한의 해임 요구에 시달리다 결국 자리를 물러나야 했다.

이 정부 들어서도 해군이 북한 경비정의 침투를 격퇴하고도 보고체계상의 문제를 들먹이며 압박해 온 정치권의 압력으로 오히려 지휘관들이 징계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기업들 역시 대북 사업 때 북한 당국에 비공식적인 ‘성의’를 표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고 웬만한 북한의 요구는 들어주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몽헌 전 현대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정확한 배경도 아직 규명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북한 당국은 “도대체 남북 경협이 왜 이렇게 진행돼야 하느냐”라고 답답해 하던 많은 한국 국민들이 현 회장의 태도를 보며 가슴이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남한 국민들의 세금이 들어가는 남북경협은 국민들의 지지 없이는 성공할 수가 없다.

북한이 개성 관광을 현대가 아닌 다른 남한 기업에 제안하고 있는 것도 속 보이는 남한 기업 이간책인 데다가 이 상황에서 국세청이 현대그룹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해 세무조사의 칼을 들이대고 있는 것을 보면 남북한이 현대를 협공하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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