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성’과 ‘낙관도 비관도 않는다’

2단계 4차 6자회담의 개막을 앞두고 주요 수석대표들이 내놓은 회담 자세와 전망에 대한 키워드는 각각 ‘유연성’ 내지 ‘융통성’ 과 ‘낙관도 비관도 않는다’로 집약할 수 있다.

한국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등이 13일 개막 직전에 비슷한 뉘앙스의 발언을 한 것이다.

송 차관보는 이날 베이징(北京) 서우두공항에 도착한 직후 “각측이 유연한 입장을 보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낙관적인 기대를 할 만한 충분한 근거는 없지만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앞서 힐 차관보도 베이징행 대항항공편 기내에서 “우리는 유연성을 갖고 있다”면서 회담 전망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며 “북한을 만나 보면 그 여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부상 역시 이날 오전 평양을 떠나기 직전 신화사통신과 만나 “필요한 원칙을 견지하는 한편 필요한 시기에 융통성을 보일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유연성이 이구동성으로 강조된 것은 1단계 회담과 휴회기를 통한 다양한 접촉과정에서 핵심 쟁점이 된 핵폐기의 범위와 그와 관련된 평화적 핵 이용권리, 경수로 등의 문제를 놓고 접점을 찾아보자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유연성 언급은 스스로 유연해지겠다는 의미도 있는 반면 그에 상응하는 상대방의 유연성과 양보를 촉구하는 완곡한 의사표시일 수도 있는 만큼 협상 과정에서 주고 받기가 이뤄질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으로도 풀이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연성’이라는 전략적 화두를 통해 ‘우리는 노력할 만큼 하겠다’는 대외 공세를 취함으로써 협상과정에서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하지만 김 부상의 이날 발언을 보면 북미 간 입장차이가 여전함을 드러냈다.

특히 김 부상이 “평화적인 목적의 핵 활동을 활 권리가 있다”며 “경수로를 가져야 하며 이 것이 핵문제 해결의 관건”이라고 밝힌 대목은 이번 2단계 회담과정이 순탄치만은 않게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국이 제시한 4차초안에 경수로에 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언급이 빠져 있다는 점을 감안해 경수로에 대한 분명한 언급을 희망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물론 제네바 합의의 산물로 건설하다 중단된 신포 경수로의 폐기를 강력하게 희망해온 점에 비춰 경수로에 대한 언급 자체에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우리측 대북 송전계획인 중대제안을 내놓은 것도 이런 미국의 반대 때문이었다.

아울러 김 부상이 평화적 핵 활동과 관련, “정당한 권리이기에 미국이 이에 조건을 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점은 경수로보다 절충점을 찾기 쉬울 것으로 보였던 평화적 핵 이용권도 난제가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 대목으로 해석된다.

이는 휴회 기간 미국이 핵개발 계획폐기, 핵무기비확산조약(NPT) 복귀, 국제사회 신뢰회복 등의 3대 조건을 회복하면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목적 핵 개발 계획을 용인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 것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이날 북한과 미국 수석대표는 막상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해서는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변을 하지 않아 결전을 앞둔 결연한 모습을 연출했으며, 이는 “기존 입장을 견지하면 좋은 결과를 내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북미 양측의 ‘유연성’과 ‘결단’을 우회적으로 촉구한 우리측 송 차관보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이날 개막 전 양자협의에 이어 수석대표 소인수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막이 오르는 2단계 회담의 성패는 유연성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고비에서는 전략적 결단 여부에 달려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 같은 관측은 수석대표들이 이날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베이징=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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