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께 올리는 글' 파장
"김부회장 비리와 타협 안할것" 공개
북 거꾸로 압박하는 협상전략일수도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 북한측에 대해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대북사업의 기로(岐路)’까지 거론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현 회장이 김윤규 부회장을 지목해’비리 경영인’이라고 직접 거명한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하루 전날 까지만 해도 현대그룹 안팎에서는 현 회장이 대북사업 관련 업무에서 한 발 물러설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직접 나서기보다는 시간을 벌면서 북측을 설득하자는 내용이었다.

상황은 하루 만에 돌변했다. 예상을 뒤엎는 대국민 발표이기 때문에 파급효과는 훨씬 클 수밖에 없다.

현 회장의 본심(本心)이 뭔지, 향후 대북사업의 향배가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윤규 부회장을 다시 끌어안지는 않을 가능성 크다는 점이다.

현 회장이 김윤규 부회장을 비리 경영인으로 공개한 핵심인 ‘비리 내용’은 무엇일까? 현 회장은 비리 경영인을 거론하며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김윤규 부회장, 온정각 시설 무단 임대=김 부회장의 비리는 수개월 전부터 현대그룹의 공식 감사 내용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럴 듯하게 나돌았다.

이들 중 현대아산 내부에서 사실을 인정한 것들만 해도 꽤 많다. 그룹의 한 임원은 “금액이 많지는 않지만 적발 건수는 많다”고 귀띔했다. 감사지적 사항은 크게 개인 비리와 공적 업무 비리로 나뉜다.

지인 관리 부실이 첫째다. 현대그룹 관계자는“금강산 휴게소격인 온정각 시설 일부를 한 여성 지인(知人)에게 임대했고, 내부 시설 공사비를 현대아산 경비로 충당한 것이 적발됐다”고 말했다. 액수는 6000만~7000만원에 달한다는 추산이다.

김 부회장의 장남 관련 지적도 있다. 김 부회장이 현대아산의 각종 사업을 아들 명의로 추진하는가 하면 심지어 아들 관련 집안 행사를 회사 경비로 충당했다는 사실을 지적받았다는 후문.

현대아산 관계자는 “김윤규 부회장은 평소 회사 자금을 집행할 때에도 꼼꼼하지 못한 면이 많았는데 감사에서 처리 잘못과 회계 부실이 지적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법인카드 임의 및 한도 초과 과다 사용건도 지적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 관련 공적 업무에서도 꽤 많은 지적을 받았다. 현대아산측이 사실을 인정한 사안 중 하나가 냉면집 옥류관의 허위 출자건이다. 김 부회장은 옥류관 사업경비를 주변 지인들로부터 충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업경비는 40억~50억원선. 현대그룹 관계자는 “지인들로부터 사업비를 충당하면서 자신은 투자도 않고 공모주 20%를 배당받았다”고 말했다. 사업비를 수억원 이상 부풀리고 자신이 투자한 것처럼 조작했다는 지적이다.

◆김 부회장 추진 사업 상당수 부실 가능성=현대아산이 추진해온 각종 사업의 부실 가능성도 감사에서 지적당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김 부회장이 계약서에 직접 사인한 사업들 상당수가 엉터리 부실 계약됐고, 향후 적자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이 직접 간여한 사업은 금광산사업과 개성공단, 개성관광사업, 통신과 철도·전력 등 7대 협력 사업 등 광범위하다. 한 현대아산 임원 출신은“북한에서 직접 협상을 할 때 김 부회장이 주변 말을 무시하고 홀로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현 회장은 김 부회장의 비리 공개를 통해 북측을 강하게 압박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김 부회장이 공사(公私)적으로 비리가 많다는 점, 아울러 그 실태까지 노출시켜 북측을 거꾸로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

여론이 김 부회장에게 부정적으로 돌아서고, 현 회장의 인사문제 처리에 대해 긍정적으로 돌아설 경우 현 회장은 향후 대북사업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물론 북측에서 ‘노’(NO)할 경우 현대가 쌓아놓은 그간의 대북사업 모두를 일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광회기자 santafe@chosun.com
조형래기자 hrc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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