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이 작가·자전에세이 ‘국경을 세 번 건넌 여자’

북한을 떠나 한국에 온 지 6년. 나는 이제 한국말(!)을 잘 알아듣는다. 사람들도 내 말을 다 알아듣는다. 그걸 봐도 남과 북 사람들의 개별적 의사소통은 분명 가능하다.

그런데 공식 석상에서 남·북의 소통은 내가 보기에 무척이나 서투르다. 북에 다녀온 남쪽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젓는다. 이산가족 만남 때마다 그랬고 작가들 만남 때도 그랬다.

“김정일 장군님의 배려로 잘 살고 있고, 장군님께서 이 상봉을 마련해 주셨고…”라는 말이 도무지 끔찍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 말의 뜻이 뭘까. 내 경험에 따르면 그런 말은 “(이런 자리에서) 정치에 관한 논의는 부담스러우니 피해 달라”고 못박는 의미일 뿐이다.

남북작가대회에서 북의 소설가 홍석중은 “김정일 장군님께서 이 대회를 마련해 주시고 심혈을 기울여 하나하나 봐주셨습니다”는 발언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뭔가 이상쩍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도대체 홍석중 정도가 굳이 그런 생색을 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임꺽정’을 쓴 홍명희의 손자인 그는 이름난 작가다. 남쪽 작가들은 그와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김일성·김정일을 제외한 어떤 개인도 숭배받아서는 안 되는 곳이다. 이런 실정을 모르는 남쪽 사람들이 자신에게 포커스를 집중하는 경우, 예상치 못한 피해를 당할 수 있다.

홍석중의 발언에서 그런 메시지를 읽어야 비로소 의사소통이 되는 것이다.

중국에서 몇 년간 북한 사람들을 상대로 일한 분이 내게 이런 호소를 했다. “아니, 그렇게 위해주는 데도 왜 끝까지 속을 터놓지 않아요?”

북한 사람 하나가 몸이 아파 병원에도 데리고 가고 한약도 사주며 극진히 대해줬는데 별안간 기한이 됐다며 가버렸다. 어느날 그가 출장 길이라며 북한대표단과 함께 찾아왔다.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데, 마주앉은 그 사람이 식탁 아래로 손을 뻗쳐 자기 무릎을 꼭 잡고 한 30분 동안 놓지 않더라고 했다.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아 눈시울을 슴벅이며 말씀드렸다. “아니, 그런 최고의 대접을 받으시고 뭐가 불만이세요?”

목사님 한 분이 북한 무산에 갔을 때다. 보위원과 시장에 나갔는데 마흔 안팎으로 보이는 북한 여자 하나가 뒤따르더라고 했다.

보위원을 따돌리고 장사꾼들 속에 슬며시 숨어들자 그 여인이 번개처럼 옆을 지나며 “할렐루야!”하고 속삭였다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남쪽에서 생각하듯 그렇게 충성심 일변으로 답답한 생각에 갇혀있지 않다.

장기수 이인모가 송환되어 왔을 때, 북한매체가 선전하는 “김일성, 김정일 장군의 위대한 승리”로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대가 없이 돌려보낸 남쪽의 대범함을 보아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북한에서 기록영화로 만들었는데 김 전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내려 다리를 절며 김정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오랫동안 비췄다.

그 장면을 북한 사람들은 다르게 읽었다. 누가 더 통일을 바라는 사람인가. 다리를 절며 먼 길을 마다않고 온 남한의 노인네인가, 앉은 자리에서 늙은이를 맞는 김정일인가.

하루에 개성을 다녀오고 금강산을 갔다오게 됐다. 그런데 북한과 접촉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북한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기막힐 일인가.

북한 사람들의 억눌린 의사소통법만 알아도 북에 대해 덮어놓고 가슴을 달구든가 식히든가 하는 아픔은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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