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금강산 온정각 휴게소에서 진행된 제1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는 북녘의 동생이 남녘의 누나 품에 안긴 두 가족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전사했다고 연금까지 탔는데 살아 있다니”=

0...“아이구 동생아. 어릴적 내가 너를 얼마나 업어서 키웠는데 이렇게 머리가 허옇다니”...“누님”

경남 밀양에서 노구를 이끌고 북녘땅을 밟은 이미지(83) 할머니는 나라에서 전사했다고 ‘공인’한 남동생 리재규(74)씨를 56년만에 만났다.

9남매중 넷째인 재규씨는 6.25전쟁 당시 낙동강전선에서 전사한 것으로 육군본부에서 통보를 했으며 국가보훈처는 전사자 처리규정에 따라 연금을 재규씨 어머니에게 지급했다.

그러나 이 할머니 가족은 지난해 당국으로부터 재규씨가 북녘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마침내 이날 상봉을 하게 된 것이다.

상봉장에 들어선 재규씨는 누님의 손을 붙잡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으며 누님 도 “아이구..아이구..너 나이가 몇이냐”라며 백발이 성성한 동생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재규씨는 계속 통곡하는 누님을 달래며 “사람이란...인생이란...뭐...누님 살아 있을거라 생각도 못했어”라며 손수건으로 연방 눈물을 찍어냈다.

재규씨는 아코디언 연주를 하는 손자들과 자녀 사진을 여러장 꺼내 하나씩 설명했으며 돌아가신 어머니 소식을 듣자 눈물을 왈칵 쏟았다.

=칠순 남동생, 팔순 누나 품에 안겨=

0...“어이구..어이구”

칠순을 훌쩍 넘긴 북측 남동생 김동수(75)씨를 품에 안은 남측 누나 김화수(86)씨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대에 다니던 영민하기 그지없던 11살 아래의 남동생을 55년이 지난 지금에야 만나게 된 것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이 말문을 막았다.

반가움은 이내 울음으로 이어졌다.

화수씨는 “생전에 살아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게 정말 생시냐”며 눈물을 쏟았다. 동수씨도 시종 누님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어린시절 기억을 더듬으며 울먹였다.

서울대 사범대학에 재학 중이던 동수씨는 6.25전쟁이 터지면서 행방불명 됐다.

이후 가족들은 동수씨에 대한 소식을 전혀 접할 수 없어 죽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몇해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시도했던 남북이산가족 편지쓰기를 통해 동수씨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화수씨는 “젊디 젊은 청년시절의 기억뿐인데 이젠 보청기를 모두 껴야 대화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안타까워 했다.

동수씨는 북한에서 집필과 출판 사업을 하면서 지난 82년 받은 공훈기자 칭호증과 각종 훈장을 내보였다.

한편 이들 남매의 부친인 김영기씨는 일제시대때 한글잡지를 발행하다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대구사범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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