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회장과 맏딸 정지이씨가 26일 오후 개성 인근의 명승지인 박연폭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이씨는 “어머니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버지 닮았다고 하던데요”라고 답했다. / 개성=조형래기자

대북사업까지 수행 모녀경영 신호탄
가부장적 현대가서 예전엔 상상못할 일


개성시범관광이 처음 실시된 지난 26일. 현대그룹 현정은(玄貞恩) 회장과 맏딸 정지이(28)씨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몰렸다.

현대그룹 임직원들은 물론, 취재진, 초청인사, 실향민들까지 현 회장과 사진 찍기를 원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과거 김윤규 부회장과 방북을 할 때면 현 회장이 다소 위축되는 면이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이날 연예 스타처럼 인기를 끌었다.

박연 폭포 앞에서는 노래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는가 하면, 관광객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면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잡아줬다.

개성 관광 내내 현 회장 옆에는 맏딸인 정지이 과장이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모녀가 현대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 정몽헌 회장과 현정은 회장은 슬하에 1남2녀를 두었으나, 아들인 영선(19)군은 아직 사회 활동을 하기에는 어린 나이다.

가부장적인 분위기의 현대그룹 가문에서 모녀 경영이란 상상도 못한 일이다. 이 때문인지 현대그룹에서 나눠진 여타 형제 그룹에서는 현 회장 모녀가 경영 전면에 부상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정지이씨는 아버지 정몽헌 회장 2주기(周忌) 추모 행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등 굵직굵직한 그룹 행사 때마다 현 회장을 따라다니며 경영 수업을 쌓고 있다.

지이씨는 “경영 수업이라고 하기는 뭐하고, 어머니 말벗을 해주기 위해 같이 다닌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상선 회계부에서 근무 중인 그녀는 또 “대학 전공(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과 다른 분야지만 일하면서 배우니까 재미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소박함과는 별개로 지이씨는 지난 7월 설립된 현대그룹 IT(정보기술) 자회사인 U&I의 등기 이사로 등재되는 등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한편 현정은 회장은 개성 관광 내내 대북 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9월 안에 백두산 시범관광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31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이산가족 면회소 착공식에 참석하고 9월 1일에는 옥류관 개관식에도 직접 참가한다.

그러면서 현대그룹 내부에서는 대북 사업 진행 방식에 있어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현대 그룹 고위관계자는 “과거 대북 사업 때문에 현대그룹이 망할 뻔했다”며 “퍼주기식 사업은 절대 안 한다. 앞으로는 경제성을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 회장은 개성관광 대가로 북측에 지급해야 하는 비용과 관련, “향후 협상을 통해 관광 비용을 더 낮춰 더 많은 사람들이 개성을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또 지난 7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뒷이야기도 짧게 소개했다. 현 회장은 “김 위원장이 개성관광을 빨리 실시하라고 해 급하게 준비를 했다”며 “김 위원장은 우리가 개성관광을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조형래기자 hrc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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