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6일 공개한 한일수교회담 문서는 현재 진행 중인 북일수교 협상 과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의 한반도 침탈 역사는 남한 뿐 아니라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데다 북일수교 협상이 한창인 가운데 한일회담의 전모가 고스란히 노출됐기 때문이다.

북한과 일본은 2002년 9월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朗)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평양선언을 통해 수교의 기틀을 닦은 상태다.

평양선언에서 일본은 1995년 무라야마(村山) 담화 수준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표명한 뒤 ‘경제협력’ 방식으로 보상한다는 큰 틀에 북한과 합의했다.

일본은 한일회담을 통해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려 했던 것처럼 북한과도 경제협력, 즉 ‘자본’의 힘을 빌어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과거사에 대한 ‘의례적인’ 반성과 사과에 대한 표현이 평양선언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과거 한일회담과는 다른 대목이다.

우선 한일회담 문서의 전면 공개로 북한은 일본 정부에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마련한 셈이며, 한일협정의 취약한 부분을 파악해 보완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예상밖의 ‘호재’를 얻게 된 셈이다.

따라서 아직 경협이라는 큰 틀에만 합의하고 각론에는 들어가지 않은 상태인 만큼 일본의 과거청산을 둘러싼 양국간 협상은 더 많이 받아내려는 북한과 적게 주려는 일본의 팽팽한 신경전이 예상된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26일 “일본은 한일수교 과정을 북일수교 협상에 적용하려 할 것이고, 북한은 한일회담이 굴욕적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해 공개된 한일회담 문서가 북일 수교협상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봤다.

특히 북한은 한 번의 서명으로 훗날 과거사 청산은 물론 피해 보상까지 어렵게 한 한일회담을 교훈삼아 일본에 대해 얻어야 할 것을 확실하게 할 공산이 크다.

일제시대 피해자들에 대한 개인청구권 문제를 비롯해 유골반환 문제, 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이 그 것으로 북일 양국은 구체적인 보상문제로 들어갔을 때 합의에 상당한 진통을 겪에 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일본이 평양선언에서 사과와 반성을 표명했다 하더라도 북한의 명분을 채워주기에는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일협정을 체결하고도 오랜 세월이 흐른 최근에서야 한국에게 사과와 반성을 표명했음에도 사사건건 과거사를 미화하고 있는데다 위안부, 유골봉환, 사할린 동포 등 숱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따라서 구체적인 수교협상에 들어갔을 경우 북한은 일본에게 이 같은 사항들에 대한 일본의 확실한 청산과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는 “북한은 이번 문서 공개로 한일회담의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는 점을 염두에 둘 것”이라며 “유골반환 문제나 위안부 문제 등 한일회담에서 미진했던 부분들을 당당히 요구하고 나설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현재의 북한 사정이 한일회담 당시의 한국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지원이 시급하다는 측면에서 북한 역시 과거사 청산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결국은 일본의 경제력에 무릎을 꿇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없지 않다.

하지만 경협에 관한 한 우리 정부는 사실상 북한에 대규모 경제지원을 하고 있거나 복안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남북간에 교감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도 보상금 때문에 명분을 쉽게 놓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특히 현안으로 부각돼 있는 북핵문제가 일거에 해결되면 미국도 대규모 경제지원을 약속한 바 있어 북한의 대일협상 선택권은 과거 한일회담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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