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그리던 동생을 죽기전에 화상으로나마 만나 가슴에 맺힌 한이 반은 풀렸습니다. 손이라도 잡아봤으면 더 좋았을텐데..”

경북 포항시에 사는 손옥이(80.여)씨는 6.25전쟁 이후 죽은줄로만 알았던 남동생 남수(74)씨가 북에서 잘살고 있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과 함께 직접 얼굴을 대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남달리 공부를 잘해 중학교를 마치고 6.25전쟁 전 서울로 공부를 하러간 남수씨가 전쟁직후 한강다리가 끊겼다는 소리와 함께 소식이 끊긴 것이 생이별의 시작이었다.

손씨는 “전쟁후 일찍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남은 형제들은 남수씨가 북으로 간 것은 상상도 못하고 그저 전쟁중에 죽었거니 생각하고 7-8년간 제사까지 지냈는데 살아있는 것을 보니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울먹였다.

손씨는 “동생이 결혼해 5남매를 낳아 손자들만 10여명이 모여있는 가족사진을 보여줬다”며 “죽기전에 통일이 돼 동생가족과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남수씨의 장조카 손영자(65.여.대구시 수성구)씨는 “내가 8살일때 17살이었던 삼촌은 하모니카도 잘 불고 미술도 가르쳐 주면서 아무리 심한 장난을 쳐도 혼내는 일이 없었다”며 회상하고 “삼촌을 생각하며 ”오빠생각“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서울 가신 우리 아제는 언제오시나’며 많이 울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대구서 3번째로 만남을 가진 손씨는 장조카와 딸 김명자(47.여), 아들 진태(44) 사위 등 5명이 상봉장에 들어가려다 북측에서 누나인 손씨만 들여보낼 것을 요구해 들어가지 못하다가 “손씨가 귀도 어둡고 북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한 사람만 더 들어가자”는 가족들의 요구에 적십자사측이 본부와 통화해 결국 10여분 뒤 영자씨가 같이 들어갔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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