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공헌 재평가 주장…한반도 영향력 확보 부심

러시아는 지난 5월 9일 제 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행사를 전세계 53개 주요국 정상들을 초청해 성대하게 치렀다.

특히 러시아가 나치 독일을 물리치고 유럽에서 전쟁을 끝낸 것을 기념하는 승전 행사에 올해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정상들도 참석해 예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러시아 정부는 전세계 화합을 강조하기 위해 보다 많은 국가들을 초청했다고 밝혔지만 일각에서는 유럽에서 옛 소련군의 승리가 이후 아시아 해방을 가져왔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러시아는 일본의 침략을 받은 한국과 중국이 해방되는데 그동안 미국의 역할만이 강조됐다며 옛소련의 공헌도 재평가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2차대전 당시 스탈린은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대일(對日) 참전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1945년 5월까지 독일과 치열한 전투로 아시아 전장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유럽이 해방되자 약속대로 곧장 아시아에 병력을 투입했다는 것이다.

유리 바닌 러시아 동방학연구소 교수(한국사 전공)는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소련은 1943년 테헤란회담 약속에 따라 유럽 종전후 병력을 아시아에 파견했고 소련군 1천963명이 한국(주로 북한) 영토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사망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1945년 8월 15일 한국이 해방을 맞기에 앞서 소련은 같은달 8일 일본에 공식 선전포고를 했고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이었던 바실레프스키 원수는 조선인들에게 일본에 저항할 것을 권고하는 특별격문을 띄우기도 했다.

또 선전포고 직후 소련 폭격기들이 웅기, 나진, 청진 등에 있던 일본 군사시설에 대해 폭격을 시작하면서 소련군이 대일전에 본격 참가했다는 것이다.

러시아내 한국 전문가들은 특히 8.15 해방이 남북 분단으로 이어진데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면서도 러시아의 북한 진주가 남북 분단을 유발했다는 지적에는 반대하고 있다.

미하일 박 모스크바대학 교수는 최근 “스탈린은 루스벨트가 제시한 신탁통치 방안을 노골적인 침략정책으로 여겼으며 이를 결코 지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른 학자들은 소련이 북한을 맡고 미국이 남한을 통치한다는 ’남북분할론’도 미국측이 소련의 한반도 장악을 우려해 먼저 제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방 60주년을 맞아 아직도 요원해 보이는 통일문제에 대해 러시아 전문가들은 일본이나 미국의 개입에 휘둘리지 말고 남북한이 다양한 접촉을 통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다.

또 일본의 경우 통일된 한국이 동북아 지도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우려해 남북통일에 미온적이지만 러시아는 통일 한국이 동북아 세력균형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강조한다.

다만 러시아 국경과 접한 통일 한국에 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약간의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러시아는 현재 남북한과 함께 참여하면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보를 위해 6자회담에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있다.

러시아는 6자회담에서 한국의 견해에도 호응하지만 한반도 비핵화라는 전제하에 북한의 체제 보장도 주장하면서 남북한에 공정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반 사프란축 러시아 국방정보센터장은 “과거 2~3년 전만 해도 러시아는 한반도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애썼지만 이제는 6자회담에 참여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점차 입증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러시아는 한국과 밀접한 경제협력을 통해 상호의존을 높이고 여기에 북핵 문제를 통한 러시아의 안보 역할을 증대함으로써 8.15 해방이후 분단돼있는 한반도에 영향력을 꾸준히 미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남한과 북한 어느 한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등거리 외교를 구사한다는 게 러시아 정부의 방침이다./모스크바=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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