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3일 “북한이 핵을 廢棄하면 한국이 독자적으로 200만㎾의 전력을 북한에 직접 공급한다”는 우리 정부의 ‘중대 제안’에 대해 “한국 제안을 6자회담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말 열릴 예정인 6자회담의 큰 골격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다른 참가국들은 북한에 體制保障과 경제지원을 약속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체제보장은 미국이, 경제지원은 한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6자회담의 핵심 당사자로 남북한과 미국, 3자를 꼽아온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지난 6월 17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에서 對北 전력공급 제안을 미리 설명하고, 이런 제안 내용이 다른 참가국들에도 다 알려짐에 따라 6자회담에서 한국이 당초 기대대로 주도적 또는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졌다.

한국의 유일한 협상카드인 對北 경제지원의 내용과 규모는 이미 공개됐고, 공개된 협상카드는 협상카드로서의 가치를 상실하는 만큼 6자회담은 미·북 양자협상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북한은 한국의 전력공급 약속을 주머니 속에 확보해 놓았다는 계산 아래 미국과 체제보장 문제만 줄다리기하려 들 것이다. 북한은 또 전력공급 외의 추가적인 경제지원을 요구하거나, 전력공급 방식도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로 바꿔줄 것을 요구하고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대북 경제지원을 위한 재정부담을 한국 또는 일본에 떠맡기기 위해 설득하는 수고를 덜고, 라이스 장관 말처럼 한국 제안을 6자회담에서 활용하는 방안만 논의하면 되는 수월한 상황을 맞게 됐다.

10년 전 1차 북핵위기 때 한국은 일본과 함께 경수로 공사비를 떠맡는 대신, 미국에 대북 重油 지원 부담을 지웠었다. 이번엔 정부가 ‘전력 공급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맡겠다’고 미리 치고 나가는 바람에, 실제 送電이 될 때까지의 대북 중유 공급을 누가 맡느냐는 문제가 협상과제로 남게 됐다.

우리 정부는 북한을 6자회담장에 끌어내기 위해 대북 전력공급 제안이라는 先導的 조치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쓸 수 있는 마지막 협상카드를 북한에 대한 6자회담 초대장으로 消盡해 버린 한국이 막상 6자회담장에선 들러리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부담하지도 않아도 될 추가 부담까지 떠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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