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정의 전초기지’ㆍ‘주권국가’ 차이 해소가 관건

북핵 6자회담의 7월 재개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선(先) ‘명분’ 마련 요구가 막판 쟁점으로 떠오른 형국이다.

북한은 아직 명분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이 있어야 결심할 수 있다는 입장이며, 조지 부시 미 행정부는 이미 뉴욕접촉 등을 통해 ‘할 얘기’를 다한 만큼 이제는 북한이 ‘날짜’를 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는 것이다.

북미 양국은 지난 달 30일과 1일 이틀간의 전미외교정책협의회(NCAFT)주최 세미나에서도 이를 두고 서로 주장을 폈지만 아직은 접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북한의 6자회담 재개 명분은 한마디로 부시 미 행정부가 자국을 겨냥한 ‘폭정의 전초기지’(Outposts of Tyranny) 발언을 철회해야 한다는데로 모아진다.

지난 1월 18일(현지시간)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내정자가 상원 외교위 인준청문회에서 문제의 발언을 한 이후 북한은 지속적으로 그 발언의 철회를 요구해오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지난 달 17일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과의 평양 면담에서 “7월 중 6자회담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의지를 밝히면서도 “미국이 우리를 상대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면”이라는 전제조건을 달아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철회를 에둘러 요구하기도 했다.

6자회담 북한측 차석대표인 리 근(李 根) 외무성 미국국장도 뉴욕 세미나에서 미측 카운터 파트인 조셉 디트러니 대북협상대사에게 회담의 재개조건으로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철회를 분명히 요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미측의 입장은 확고해 보인다.

이미 여러차례 ‘북한은 주권국가’라고 밝혔고,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은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 행정부는 ‘북한은 주권국가’라는 표현에는 6자회담에서 동등한 자격으로 대접할 수 있다는 것이고 침략할 의사가 없으며, 특히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궁극적으로 양국이 정상적인 관계로 갈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주권국가라는 언급에는 만족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폭정의 전초기지’와 ‘주권국가’라는 표현의 차이는 무엇일까.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폭정의 전초기지는 핵문제라는 ‘국가안보’ 보다 상위 개념인 ‘정권안보’를 겨냥하는 말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를 직접 겨냥한 것”이라며 “따라서 북한이 이를 양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에 비해 “주권국가의 개념은 김정일 정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으로 핵문제 해결 이후에도 미사일, 인권, 마약 등의 다른 사안으로 북한이 또 다시 심판대에 세워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정부 관계자는 “두 개념의 차이 해소가 6자회담 재개의 가장 큰 포인트”라고 말했다.

이 차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북미 어느 한 쪽이 양보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고, 그와는 달리 중간에서 타협하는 방법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지난 5월 이후 두 차례의 뉴욕접촉과 6.10 한미정상회담, 6.17 정동영- 김정일 면담 등의 긍정적인 모멘텀에도 불구하고 북미 양국이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과 관련해 서로 입장을 굽히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일방의 양보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그럼에도 타협의 가능성은 지난 달 21일 한성렬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의 발언에서 실마리가 찾아질 공산이 커 보인다.

당시 한 대사는 개인 의견을 전제로 “(미 행정부가) 한달만이라도 ‘폭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7월 중에라도 6자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6자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 미국이 (그 표현을) 안 쓰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미 행정부의 신중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때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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