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17일 비록 미국과의 추가 협의를 단서로 달았지만 오는 7월 6자회담에 복귀할 용의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평양 대동강 영빈관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단독면담한 자리에서 “상대방이 우리를 인정, 존중하려는 뜻이 확고하다면 7월에라도 나올 수 있다”며 “그러나 이는 미국과 좀 더 협의해 봐야하겠다”고 밝혔다고 정 장관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핵 문제와 관련,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유효하고 이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며 ▲북한은 6자회담을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고 거부한 적도 없으며 ▲미국이 우리를 업수이 보기 때문에 맞서 보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날 핵 관련 발언은 무엇보다 북측이 자체 핵문제 해결에서 남측의 역할을 평가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평가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비록 단서조항을 달기는 했지만 북한이 6자회담 복귀 시기를 7월로 적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그 것도 북한 최고 지도자 입을 통해서 나왔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또 그의 북핵 보유 배경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진솔한 측면도 있어 보였다.

북측은 그동안 핵 문제를 체제보장 문제와 연계, 미국하고만 논의할 수 있는 분야로 특화해 왔기 때문에 이번 발언을 계기로 북측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남측에 부여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기대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남측은 참여정부 들어 남북관계와 북핵문제를 병행 추진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이 같은 노력은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2002년 10월 방북한 뒤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핵개발프로그램 의혹을 제기하면서 가중됐다.

남측은 그 해 10월 22일 제8차 남북 장관급 회담 공동보도문에 핵 문제를 처음으로 포함시킴으로써 미약하나마 북핵 문제 해결 노력에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남북은 당시 8개항으로 구성된 공동보도문 제1항을 통해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맞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핵문제를 비롯한 모든 문제를 대화의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적극 협력하기로 한다.”고 명시했던 것이다.

당시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이 보유하고 있는 핵 무기를 염두에 두고 1항을 삽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쨌든 8차 장관급회담은 핵 문제가 처음으로 남북관계 전면에 등장한 계기가 됐다.

제8차 장관급 회담 이후 지난 해 5월 제14차 장관급 회담에 이르기까지 북핵문제는 회담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됐고 현재까지도 남측의 가장 큰 관심사가 돼왔지만 북한은 남한을 북핵 문제를 논의할 진정한 카운터파트로 인정하는 데는 지극히 인색한 모습을 보였던 게 사실이다.

북한은 자체 핵을 이날 김 위원장이 밝힌 것처럼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에 맞서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자위적 군사조치로, 오로지 북미 양자간에 풀어야할 문제로 고집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지난 2월 10일 핵무기 보유 및 6자회담 무기한 중단 선언과 3월 31일 핵무기 군축회담 제안, 5월 11일 영변 원자로 폐연료봉 인출 완료 발표 등으로 북핵 문제가 다시 최대 화두로 떠오르면서 미국과 일본은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한편으로 강경 대처할 뜻을 은연중 내비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북한의 전통적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 역시 한반도 비핵화를 강력 주장해온 터였기에 북한측의 이같은 발표에 내심 못마땅해 했던 것도 사실이다.

북한은 자연히 대화할 상대를 잃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3일 “이제 남북한이 북핵 문제 해결의 중요한 당사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면서 “그랬을 때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도 보다 좋은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면서 적극적인 중재자역을 자임하고 나섰다.

기존 동맹국들로부터도 백안시 당할 처지에 놓인 북한으로서는 튼튼한 동아줄로 보였을 수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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