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昌基
편집국 부국장

10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릴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만약 부시가 이렇게 말문을 연다면 어떻게 될까.

“노 대통령은 2002년 취임사에서 ‘북한의 핵 개발은 용인될 수 없다. 북한은 핵 개발 계획을 포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문제가 대화를 통해 해결되도록 미국·일본과 공조를 강화하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3년 뒤인 지난 2월,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6자회담은 중단된 지 1년입니다. 이제 무슨 공조를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노 대통령은 이렇게 답할까? “북한 말, 믿을 수 있습니까. 그들이 핵무기를 실제로 가졌다는 구체적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문제가 안 풀린 게 한국 탓입니까. 미국이 좀 더 성의를 갖고 대화를 계속해 보시지요….”

북한 핵개발의 진짜 목적이 핵 보유가 아니라 협상용이라면, 6자회담에 1년이 다 되도록 응하지 않는 것은 북한에 어떤 이득을 주고 있는가. 북한은 시간을 끈 만큼 ‘판돈’을 올리는 데 성공하고 있는가?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을 얻는 게 목적이라면 북한은 지난 십여년의 세월을 허송했을 뿐이다. 또한 앞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그들이 얻을 몫은 어차피 미국이 주기로 작정하고 공언한 것보다 크게 더 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골탕 먹인 것만큼, 반대급부 챙기기도 까다로워질지 모를 일이다. 만일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개발했거나 하고 있다는 데 노 대통령도 동의한다면, 그 다음 대답은 무엇이어야 할까.

백악관 비서실 부실장인 칼 로브(Rove)는 달포 전, 북한이 6자회담을 끝내 외면할 경우 미국은 북한 핵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가게 될 것임을 시사했다.

부시의 국내정치·선거전략 참모인 로브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산적한 백악관의 국내외 정책과제들 가운데 북핵 문제가 대단히 높은 우선순위로 올라와 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5월 하순에 나온 미국 상원의 공화당 정책위원회 보고서는,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에 미국은 6자회담 참가국과 협의를 강화하고 대북 비난 및 경제 제재를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제재 자체를 대북 선전포고(宣戰布告)로 간주할 것이며 ‘자위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위협해 왔다.

하지만 지난달 워싱턴에서 만난 미국 정부의 오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의 선제 공격 가능성에 대해 “북한 정권이 자살의 길을 택할 정도로 어리석겠느냐”고 했다.

물론 유엔으로 간다면 긴장은 고조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길도 별로 쉽게 보이지 않는다. 대화로 해결하겠다는데, 대화의 장에 나오길 거부한 게 1년이다.

사실은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곧바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가 북한이 또 언제 무슨 빌미로 회담을 중단할지, 또는 이야기를 언제까지 마냥 끌 것인지, 누구도 알 길이 없다. 6자회담의 목표는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4년 전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햇볕정책에 관한 설명을 듣다가 말고 “이 사람(DJ)은 자신이 누구라 생각하는 거야”라고 측근에게 말했다는 이야기가 최근 공개됐다.

노 대통령은 한·미관계를 걱정하는 국내 인사들에 대해 ‘미국인들보다 더 미국적인…’이라고 말했지만, 부시야말로 노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이 사람, 한국 대통령 맞아?’라고 생각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두 정상이 이제는 북핵 해결의 실질적·구체적 방안을 논의하고 합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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