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박정훈기자】 북한은 과연 변화하고 있는가. 한달전 평양에서 북한 당국과 교섭을 벌였던 다카노 고지로(고야행이랑·58) 일·북한 국교정상화 교섭 대사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한다. 남북 정상회담 발표 직전인 4월초 북한을 방문했던 그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와 교제를 시작했다”며 낙관적 시나리오를 펼쳤다.

-평양의 인상은.

“회담 테이블 등에서 교섭상대를 통해 느낀 인상을 말하자면, 우선 북한의 정치체제가 꽤 안정돼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대단히 잘 정비되고 준비된 태세를 갖고 우리와의 교섭에 나왔다. 반면 경제적으로는, 식량사정이 약간 호전됐다고들 하는데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식량문제를 포함한 전반적 경제조건이 아직 심각한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방북때 김정일 총비서를 만났는가.

“면담신청도 안했다. 강석주(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표경방문했는데, 일본과 관계개선에 나서겠다는 진지한 열의를 감지할수 있었다. 교섭 상대방인 정태화(정태화) 대사와는 묘향산에서 보드카로 대취하며 신뢰관계를 다졌다. 그들은 대단히 적극적이었다. ”

-일련의 대외 유연정책은 김정일 총비서의 작품인가.

“김 총비서가 직접 지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권 내부의 꽤 고위레벨의 의향이 반영돼있음은 분명하다. 내 개인적 견해로는, 이렇게 중요한 대외정책이 차례차례 결정돼 나오는 것 자체가 ‘지도자’의 정치적 지위가 강화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증거로 이해한다. 다만 북한에선 김 총비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것 같더라. 공식석상에선 김 총비서의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비롯, 일본·서구 등과 관계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과연 변하고 있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아도 틀림없을 것이다. 북한은 외국과의 교제범위를 가능한 넓혀가려 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 진입하겠다는 자세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국제사회 전체가 환영해야 할 일이다. 특히 아직 냉전구조가 남아있는 극동지역의 긴장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

-북한이 변했다면 그 이유는.

“북한이 스스로의 장래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의미 아닐까. 즉 국가로서 살아남기 위해선 주변국, 특히 한·미·일과의 우호관계를 진전시키는게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본다. ”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질서는 어떻게 펼쳐질까.

“지금은 북한과 국제사회의 본격적 교제가 막 펼쳐지려 하는 시점이다. 가장 중요한 기본은 어디까지나 남북관계다. 남·북을 중심으로 일·북한, 미·북한의 3갈래 관계가 개선돼 나가는게 중요하다. 가장 먼저 시작된 미·북한 관계가 최근 다소 멈춰선 사이 일·북한이 대화를 시작했고 남북한도 곧 정상이 만난다. 환영해야 할 일이다. ”

-한반도에도 드디어 봄이 온다는 뜻인가.

“물론 일본으로서도 제반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리라고는 보지않는다. 여러가지 장애물이 존재한다. 그러나 기본적 흐름은 긴장완화와 냉전구조 해소의 방향을 타고 있다. 큰 방향 자체는 반드시 그 쪽으로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되도록 한·미·일이 끈질긴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북한도 같은 생각으로 응해주길 바란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게임 아닌가. ”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북한의 태도를 낙관해선 안된다는 신중론도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개최 자체가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우선은 남북이 합의한대로 회담이 순조롭게 열려 양측 정상이 손을 맞잡는 것 자체에 의미부여를 해야 한다. 정상회담에서 유익한 결론이 나온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말이다. ”

-북한의 인프라 건설에 일본은 관심이 있나.

“일본정부가 북한내 건설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선 먼저 국교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있다. 국교가 재개되고 북한이 희망한다면, 그에 수반되는 조치로서 일본정부가 할수 있는 일은 기꺼이 할 것이다. 다만 일본의 민간기업이 개별적으로 참가하는 것은 (일본정부 입장과는) 별개 차원의 문제다. ”

-이달 하순 도쿄에서 열릴 두번째 일·북 교섭의 전망은.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가 산적한 교섭인 만큼 한두번으로 급속한 진전이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교섭해나갈 방침이다. 한·일 국교정상화도 15년이 걸리지 않았는가. ”

-최대 장애물인 일본인 납치의혹에 북한측 태도변화는 있나.

“4월초 회담에선 서로의 입장차이만 확인했다. 북한은 과거청산, 즉 사죄·보상과 문화재 반환 등의 문제까지만 교섭하고 그 외 사안은 논의하지 말거나 나중으로 미루자는 입장을 갖고있다. 즉 납치문제는 논의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반면 일본은 과거문제와 납치·미사일 문제 등을 한꺼번에 병행하자는 입장이다. ”

-역시 최종적으로는 경제지원 문제가 관건이 될텐데.

“한일 국교정상화 때도 경제문제가 대단히 힘들었다. 나는 35년전 한일간 방식이 일·북한간에도 적용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의견을 좁혀나가면 해결이 안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

-보상금액을 놓고 여러가지 추측이 무성하다.

“아직 경제협력의 형태랄까, 표현 자체를 놓고 현저한 입장차이가 있다. 북한은 ‘보상’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재산청구권’으로 접근하고 있다. 금액이 얼마니 하는 얘기가 나올 때가 아니다. ”

-미사일 등의 안전보장 문제에서 북한입장에 변화는 있었나.

“현재로선 없다. 종래처럼 일본과 논의할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북한과의 수교는 일본에 어떤 이익이 있나.

“우리는 서둘 생각은 없다. 하지만 국교의 조기정상화가 서로에게 이익이 됨은 자명하다. 국교가 없는데서 오는 불안정 요인과 이를 커버하기 위한 여러가지 코스트를 감안하면 하루라도 빨리 국교를 정상화하고, 이를 남·북, 미·북관계로 이어갈 필요가 있다. ”

-대사의 한반도와의 악연(악연)으로 시작됐다던데.

“내가 외무성 공보과장이던 83년 대한항공 피격사건이 터져 정말 고생했다. 덕분에 3년이나 근무해 역대 최장수 공보관 기록을 세웠다.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만 해도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종종 현실로 나타나곤 하는 법이다. 나는 지금 일본외교의 마지막 과제를 담당하고 있다는 보람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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