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1세기, 새 천년도 열흘이나 넘어 흘러갔다. 아직도 21세기라고 하면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에 속하는 시간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우리는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침마다 신문을 보면 별로 새로운 뉴스는 없는 것같이 느껴진다. 지나간 20세기에도 지루할 정도로 자주 들어온 이야기들 뿐이다.

가령 연초부터 미국의 증권시장이 폭락하면서 한국 증권시장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뉴스는 별로 새로운 뉴스 같아 보이지 않는다.

국내 뉴스는 온통 총선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뿐이다. 물론 그렇게 달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총선을 향해 뛰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라를 위해’ 움직인다고 한다. 그것도 선거 때마다 들어온 귀에 익은 소리다.

북한 소식도 새로운 것은 없다. 중국 주재 북한대사는 미국이 먼저 크게 양보하지 않으면 이미 약속한 고위급 회담도 할 생각이 없다고 하면서, 더욱이 남북 정상회담은 남쪽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북쪽이 하라는 대로 해야만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나라 밖의 소식들도 다 아는 이야기들이다. 러시아는 아직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장악하지 못했고,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 독립 후에 아체 등에서 분리주의 압력에 부딪쳐 어려운 시련을 맞고 있다. 그리고 또 다시 중동평화협상이 열린다고 한다. 이번에는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협상하는데 역시 미국이 중재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지루하고 답답한 세상이다. 한 세기가 지나갔는데도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물론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겉으로는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세상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증권시장 소식은 경제와 금융의 세계화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2000년 정초의 신문 1면을 장식하기에 매우 적절한 뉴스였다. 왜냐하면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세계화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우리 경제는 이미 세계경제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게 되었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선택은 세계화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세계화를 효과적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비효과적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선거 이야기는 지겹지만 중요하다. 민주정치는 선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총선을 향해 뛰는 사람들이 정치를 바르게 하도록 하려면 유권자들부터 정신차려야 한다.

북한의 주중대사는 북한이 늘 해온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북한이 주중대사를 통해 그런 요구를 내세운 것을 보면 그들이 반드시 그런 요구에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지금 세계는 평화를 누리고 있다. 체첸과 아체는 지역에 국한된 문제로 세계평화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북한도 타협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많은 나라가 미국의 패권을 비난하면서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질서에 적응하고 있다. 21세기는 평화의 세기가 될 것인가?

1900년에도 세계는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는 피투성이의 세기가 되고 말았다. 오늘의 평화를 보고 내일의 평화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현재는 불안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새 천년 정초의 뉴스가 낯익은 이야기들이라고 현상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면 변화가 우리를 주도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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