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통한문제연구소(nkchosun.com) 김미영기자입니다.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자 유태준씨가 북한에 남은 아내를 데려오려다 북한에서 공개처형 당했다는 기사가 조선일보에 나간 지 한 달 반쯤 지났습니다. 기사가 나간 후 저는 미국이나 일본에 계신 교포분들로부터 이메일이나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4월 22일에는 워싱턴의 교민들이 기도회를 열고 '유태준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성명서'를 채택해 남북한 정부에 보내기도 했지요. 그러나 국내의 반응은 잠잠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듯합니다. 북한이 무슨 짓을 하든 '그러려니' 하는 오래된 '좌절감' 때문일까요?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정부의 태도입니다. "유태준 자신이 처신을 못해서 잘못된 것이다"라는 의견을 주시는 독자분들도 있는데 그가 '운이 나빴다'거나 '무리한 여행을 했다'는 것에 이의를 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는데 정부가 특별히 잘못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전히 묵과할 수 없는 것은 그의 행방불명이 확인된 작년 6월부터 정부의 태도입니다. 타임지의 도널드 매킨타이어 기자는 제 말을 인용해 "정부는 유태준을 가볍게 공기속으로 날려버리려 했다"고 표현했는데 여전히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태준이 남긴 메모에 따르면 그에게는 농협, 조흥은행, 한국투자신탁 등에 적금계좌가 개설돼 있는데도 재산관계마저 불문에 붙여져 있고, 한국 법에 무지한 탈북 유가족들은 속수무책으로 앉아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요. 유씨가 남긴 아들 윤호를 위해서도 아무런 대책이 없이 말입니다.

더구나 지금에 와서 정부는 "유태준은 밀입국했다. 그래서 신변을 정리했다"는 식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유씨는 중국에서 북한의 체포조에 의해 불법적으로 '피랍'된 것입니다.

지난 4월 12일 기자실에 들른 통일부 홍양호 인도지원국장은 유태준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지난해 8월 밀입북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공개처형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국회 통일외교위 소속 박관용의원이 요청한 통일부 요구자료에도 "유태준의 입북을 주선한 조선족 최某(36·중국 연길 거주)로부터 유태준이 북한 밀수꾼의 안내를 받아 재북 처 최정남(31)을 탈북시키기 위해 밀입북한 사실 확인"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문맥이 좀 이상하지요. 어쨌든 이에 따르면 유태준의 '입북'을 주선한 사람은 최모라는 조선족입니다.

국회에서 맹형규 한나라당 의원이 이 문제를 제기하자 임동원 통일부 장관은 "유태준씨는 98년 11월에 탈북하여 중국에 체류하다가 98년12월에 밀입국 귀순한 사람으로서 작년 6월에 중국으로 출국한 후 소식이 두절되어 소재를 파악하던 중 북한에 남아 있는 처를 탈북시키기 위해 입북하였다는 첩보를 입수하였습니다마는 유태준씨의 처형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아서 현재 관계기관에서 계속 확인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현재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인 셈입니다. '유태준은 밀입국했다'는 사실만을 거듭 확인해 주겠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최모는 조선족 장사꾼으로 99년 유태준으로부터 '아내에게 탈북의사를 타진해 달라'고 부탁받은 적이 있습니다. 기자가 입수한 유태준의 수첩에는 최씨의 전화번호와 유의 함흥 처가 약도가 그려진 쪽지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당시 최씨에게 건네주기 위해 그렸다가 뒷면에 전화번호를 적는 쪽지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최씨에 따르면 당시 유씨의 아내는 탈북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작년 6월 중국에 들어온 유씨는 다시 한 번 최씨를 찾아가 부탁을 하게 됩니다. 최씨는 이때 "함흥까지 가기는 몹시 어렵다"고 말해 난색을 표하며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유태준은 "친구가 무산에 살고 있다. 그에게 부탁해 봐야 겠다"고 하며 곧 떠났다고 합니다. 그의 밀입북을 주선한 일은 물론 없고요.

그 후 최씨는 유씨가 ‘북한에 잡혀서 죽었다’는 얘기를 풍문으로 들었는데 그 외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도 무산 친구를 만난다고 했으니 무산에 갔다가 잡혔겠거니 했던 것이죠. 우리 정부 당국은 최씨가 전한 이 얘기를 유씨의 보호 당국이었던 대구 경찰로부터 전해 듣고 기정사실화했던 것 같습니다. '밀입국했다'는 사실을 최씨의 추측에 근거해서만 기정사실화하고 유씨의 대구 거처도 정리해 사건을 덮어버리려 했던 것이죠.

최씨는 이 사건에 휘말려 불안하다고 합니다. 그가 뭔가 알고 있으면서 숨기는 것 같지는 않고요. 어쨌든 그는 유태준씨의 마지막 행적을 알려주기에 그다지 적당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그의 말에 근거해서만 사태를 판단하는 정부의 태도는 직무유기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기자에게 유의 처형소식을 알려준 믿을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유태준은 연길 역전에서 북한의 체포조에 의해 피랍됐다는 것입니다. 유태준은 자신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북한의 체포조는 중국의 공안요원들에게 "우리는 유태준의 공민권을 박탈한 적이 없다. 북한에는 아직도 그의 공민증서가 시퍼렇게 살아있다. 제 나라 국민을 데려가는데 무슨 상관인가" 라며 우겨 끝내 압송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년 가을께 처형됐다는 것인데, 이 사실을 알려준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는 백주대낮이라 목격자도 여럿 있었다는 것입니다. 6월 중순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자는 이 증언을 높이 신뢰하고 있고, 이에 근거해 취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선 유씨가 최씨에게 무산의 친구를 만나보겠다고 했던 것이 꼭 무산에 들어가겠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무산으로 가자면 개천처럼 얕은 두만강을 건너면 그만이지만 누구도 이 사선(死線)을 쉽게 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사람을 시켜 북한의 무산쪽에서 사람을 불러내 오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고, 최근에도 이렇게 불러내 돈이나 식량을 건네주는 예가 종종 있습니다. 반면 탈북해 한국에 정착까지 했던 사람이 갔다 다시 나올 요량으로 북한에 들어갈 가능성은 대단히 낮습니다. 웬만한 강심장도 어려운데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유씨는 평소 겁이 많은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국공안원을 포함, 여러 명의 목격자가 있었다는 것은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도 확인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거짓 증언'이라면 들통이 나도 금방 날 것입니다. 아직 소식통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 않길 바라고 있지만 기자는 그를 신뢰하고 있고, 언젠가는 그가 진실을 밝히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격을 놓고 생각해 볼 때, 최씨 한 사람의 추측을 근거로 간단하게 '밀입북'으로 단정짓고 관계 장관이 국회에서까지 이렇게 증언하는 것은 어이가 없습니다.

자진 밀입북이라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유태준 본인에게 돌리기 쉽고, 정부 당국도 재빨리 임대아파트 회수, 주민등록 말소, 지원금 중단 등 불법적이고 잔인하기까지 한 조치를 한 데 대한 비난 여론을 어느 정도 면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피랍'이 확실하다면 한국-중국-북한간의 국제법적이고 외교적인 문제가 야기되므로 이 골치 아픈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겠죠.

그렇다고 해서 진실을 덮어버리는 것이 옳을까요? 유태준씨의 가족들은 지난 12일 드디어 정식으로 서울 중랑경찰서에 유씨의 실종신고를 냈습니다. 뒤늦게 실종신고를 낸 까닭에 대해서 어머니 안정숙씨는 "경찰에서 입을 다물어 달라고 해서 그대로 했다. 지금에 와서 그것이 선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법적인 실종신고가 되지 않아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발뺌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이제 와서 수사도 하지 않고 밀입국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호도하려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중국측에 정식으로 태준이의 신변 확인을 요청하는 등 공개적인 수사를 해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유태준씨가 제발로 북한에 들어가 잡혔다면" 하실 분들도 여럿 있겠지만,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 우리가 한심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국민들이 훨씬 많지 않을까요? /김미영기자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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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Emailclub NK리포트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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