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지난해 초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그는 대좌였다’를 연출한 유명 영화감독 채풍기가 최근 병으로 사망했다.

북한 ‘조선예술’ 2월호는 “시대를 노래하는 수십 편의 예술영화를 연출한 인민예술가 채풍기가 우리 곁을 떠나갔다”고 밝혀 그의 사망 사실을 전했다.

잡지는 “그는 한 생을 영화 창조와 더불어 아름답게 빛낸 선군시대 영화인의 한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

그가 언제, 무슨 병으로 사망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그의 마지막 작품인 ‘그는 대좌였다’가 지난해 3월 개봉됐다는 점에서 최근 1년 사이에 69세를 일기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단히 잘 만들었다”고 극찬한 영화이다.

강원도 문천시에서 출생한 그는 감독이 되기 전인 1960년대에는 영화배우로 활동했다.

연극영화대학 배우과를 졸업한 그는 ‘갈매기호 청년들’, ‘붉은 신호탄’, ‘산울림’, ‘공장은 나의 대학’, ‘축복’ 등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했고 특히 ‘명랑한 무대’는 당시 대박을 터뜨린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그는 정상급 연기자로 위치를 확실히 굳혔다.

그렇지만 1960년대 중후반 ‘큰 실수’를 저질러 임업노동자로 전락했으며 이 사건은 그가 배우에서 연출자로 변신하는 계기가 됐다.

량강도 임업 노동자로 쫓겨나 온갖 고생을 하던 그는 그 곳에서 무대작품을 연출하는 것으로 시름을 잊었다. 그가 만든 작품이 평양에까지 진출, 1972년 8월 다시 영화계에 발을 디디게 됐다.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현재 북한군 4.25예술영화촬영소)로 스카웃돼 연출가로 활약했다.

단편영화 연출 경험만 있던 그가 중편영화에 출사표를 낸 ‘햇빛 넘치는 초소’는 예상을 깨고 큰 성공을 거둬 감독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김 국방위원장도 “이 영화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연출가가 연출을 잘했기 때문”이라고 연출능력을 인정했다.

그는 1996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그가 만든 작품으로는 ‘그는 대좌였다’를 비롯해 장편영화 ‘새 가정’, ‘우리가 사는 거리’, ‘굴하지 않은 사람들’, ‘한마음으로’, ‘보람찬 병사생활’, ‘노을 비낀 호수’, ‘초대장’, ‘군관의 안해들’, ‘고요한 전방’, 단편 영화 ‘닭알 닭알’, ‘군복 단추’, ‘토스레옷’, ‘어디가 고장인가’ 그리고 중편 영화 ‘햇빛 넘치는 초소’ 등 20여편에 이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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