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틴 호프만보다 알 파치노 닮았다고 해"
"김정일, 러' 전승기념일 참석통보 아직 없어"


"더스틴 호프만과 닮았다구요? 모스크바 외교가에서는 알 파치노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는데.."

단신에 커다랗고 강렬한 눈빛의 테이무라스 라미쉬빌리(50) 주한 러시아 대사.

3일 오후 연합뉴스 취재진을 맞아 90분간 쉴새 없이 '북핵 강의'를 한 뒤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에게 '레인 맨'의 더스틴 호프만과 비슷하다고 말했더니 이내 '대부'에서 마이클 콜레오네역을 맡았던 알 파치노와 더 닮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라미쉬빌리 대사는 이날 서울 정동의 러시아 대사관 접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시종일관 안전보장 및 경제지원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이 북핵 해결의 첩경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외교관으로는 이례적으로 '거리낌없는 성격'으로 통하는 그가 "한, 러, 일, 중 등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북미관계 악화를 막지 못했다"며 '4개국 방조론'을 제기할 때는 마치 '저돌적인 열혈파 청년' 알 파치노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그는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에 핵폐기의 대가로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지원을 약속한다는 내용의 서면 형태의 성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라미쉬빌리 대사는 북한이 핵무기 보유 및 6자회담 무기 불참을 선언한 2.10 성명에 대해서도 "새로운 내용이 아닌 것 같다"면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달 21일 왕자루이(王家瑞)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에게 '조건 성숙'시 회담에 복귀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모호한 발언이지만 긍정적이다"고 평가했다.

그는 6자회담이 난항을 겪는 배경 중 하나로 회담 의제 문제를 지적했다.

"6자회담은 '핵문제 논의의 장'이 돼야 합니다. 다른 문제들을 결부시키는 것에 러시아는 반대합니다. 미국과 양자회담을 고집했던 북한이 다자회담을 수용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지요."
라미쉬빌리 대사는 또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 대사의 역할을 극찬, 눈길을 끌었다. 힐 대사가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및 6자회담 수석대표로 임명된 것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힐 대사는 아주 능력이 있고 여러 문제들을 훌륭히 관리할 수 있는 프로 협상가"라고 답한 것이다.

그는 이어 "힐 대사는 (보스니아 분쟁을 타결한) 데이턴 평화협상에서 축적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북핵문제의 해결책을 적극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미쉬빌리 대사는 또 6자회담 과정에서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할이 미약했다는 지적에 '러시아만의 독특한(unique) 점'을 적극 홍보, 향후 회담 과정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 사격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정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등 말을 아꼈다.

"러시아는 회담 참가국중 나머지 5개국 모두와 아주 긴밀하고 공평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또, 옛소련 시절 북에 제공한 하부시설(석유정제시설, 제조업 공장, 철도연결 등) 현대화 작업을 통해 회담 복귀를 유도하는 등 당근 제공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경협문제를 정치적으로 흥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단호하게 못박았다.

앞서 한.러 경제협력과 관련,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한반도 종단철도(TKR)의 연결 프로젝트를 강조한 바 있는 그는 "남북간 군사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만큼 당분간 북한보다는 중국쪽을 선택하는 것이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연합뉴스와의 회견에서는 TSR에 연결하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81㎞에 달하는 TKR의 북한지역에 대한 시찰을 마무리했으며, TSR과 북한의 연결지점인 러.북 국경지역인 하산역에서부터 러시아 극동지역의 240㎞에 달하는 구간을 현대화하는 작업에 이미 돌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라미쉬빌리 대사는 오는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60주년 2차대전 전승 기념일 행사에서 남북한 정상간 회동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행사에 초청됐으나 김정일 위원장은 아직 참석 여부를 통보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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