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 언 뗏목은 `흰빛 유령선'
5m 파도맞자 `꽝', 식량.장비 모두 유실
"3일간 물한모금 못먹고 굶은 채 파도와 싸워"


"반드시 살아 돌아가 발해의 역사를 우리 가슴 속에 옮겨 보겠다는 일념으로 버텼습니다."
통신 두절 3일만에 러시아 해역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발해뗏목탐사대 방의천(45) 대장은 22일 5천t급 해경 경비함 삼봉호에 구조된 뒤 선상에서 국제위성전화를 통해 연합뉴스 기자에게 조난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방 대장을 비롯, 이형재(41.다큐영상 프로듀서) 황기수(39.산악인) 연정남(29.인명구조강사)씨 등 탐사대원 4명이 타고 있던 무동력 뗏목 '발해호'(폭 4.5m, 길이 11m)에 재난의 어두운 그림자가 닥친 것은 지난 19일 오후 5시.

이날 오전 8시 러시아 포시에트항을 출항한 뒤 거친 파도를 오르내리며 곡예하듯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발해호는 결국 5m 높이의 집채만한 파도를 정면으로 맞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수면 아래로 깊숙이 빠졌다.

부력에 의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선실 내에는 대원들만 남겨진 채 식량과 각종 장비 등 모든 것이 바다로 유실된 뒤였다.

방 대장은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 통신 장비를 이용해 조난신호를 계속해서 보냈지만 소금물을 먹은 통신 장비는 이미 고철덩어리로 변해있었다.

계속해서 찾아오는 파도와 맞서기를 몇 차례, 지칠대로 지친 탐사대원들에게 다시 닥쳐온 고통은 추위와 배고픔이었다.

황톳빛 통나무 색깔의 뗏목은 영하 20도의 혹한 속에서 바닷물이 얼어 붙어 흰 빛의 '유령선'을 방불케 했다.

대원들은 얼음바닥의 뗏목에 앉아 있기 조차 어려워 선실 내에 서 있다가 다음날인 20일에는 1평 남짓한 다용도실에서 4명이 서서 껴안은 채 체온을 유지했다.

식량을 모두 바다에 내주어 먹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상황.

뗏목에 붙은 얼음은 빛깔만 고왔지, 짜디짠 소금물 얼음일 뿐이어서 먹을 수도 없는 탓에 대원들은 구조될 때까지 3일간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한 채 파도와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 했다.

조난 3일째인 21일.

어느덧 두 다리 마저 뗏목의 얼음과 한 덩어리가 되며 얼어붙는 듯한 통증이 느껴질 때 쯤인 오후 4시 20분 하늘 위로 해경 초계기 챌린저호가 나타났다.

대원들은 교신을 할 수 없어 답답했지만 곧 구조의 손길이 미치리라 생각했고 결국 그 바람은 다음날 오전 7시 해경 경비함 삼봉호가 뗏목이 위치한 해역으로 출동, 대원들을 구조함에 따라 현실로 이뤄졌다.

동해의 거친 파도는 '발해 후예'들의 원정 길을 가로 막았지만 그 정신까지 앗아가진 못했다.

"동해에 도착한 뒤 대원들과 상의해 추후 탐사 일정을 다시 조정할 계획입니다."
4일간 사투를 벌인 사람의 목소리답지 않게 방 대장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또렷이 들려 왔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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