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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꿈 제가 이어 갑니다!"인터뷰-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조교 이애리 씨
방관식 기자  |  afgm5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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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02  11: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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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할머니와의 추억에 잠긴 이애리 씨. 그녀는 심씨 일가의 마침표가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조교 이애리(35) 씨를 만났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 속에 슬프고도 고혹적인 매력을 뿜어내던 무대에서와는 달리 발랄하고 풋풋한 모습이 십대 소녀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환한 웃음 속에서도 언뜻 비치는 공허한 표정에서 속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외할머니 심화영(충남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 · 2009년 작고) 선생과의 추억이 깃든 서산시 양유정 공원에서 젊은 예술인의 열정과 고뇌를 함께 했다.


◆심씨 일가의 마침표? 아니 새로운 시작!

   
▲ 아버지 심정순 기념비 앞에선 심화영 선생, 5대에 걸친 심 씨 일가의 예술혼은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다.

항상 붙어 다니는 심화영 선생의 외손녀란 꼬리표.

더 나아가 월등한 예술적 유전자를 지닌 심정순 일가의 마지막 계승자란 평가는 한없는 자부심이다. 그러나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큰 짐이기도 하다.

늘 곁에 있어 줄 것만 같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그 무게가 더 힘겹게 느껴진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20여년이 넘게 해온 춤이건만 어렸을 적 할머니가 보여주던 그 춤사위는 아직 멀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할머니의 춤과 노래는 대단했다.

   
▲ 할머니는 그녀에게 있어 거대한 산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늘 포근했다.

“초등학교 방학 때 서산에 오면 할머니가 동네 아주머니들한테 창, 장구, 춤 등을 가리키는 모습을 보고 어린 마음에 호기심으로 배우게 됐죠. 그때야 할머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몰랐죠. 저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과 같은 분입니다”

사실 할머니의 유명세 덕에 전국에서도 최연소로 꼽힐 나이인 20대 후반에 전수조교가 됐다. 그보다 앞선 예고 입학 당시에는 면접관이 심정순 선생을 비롯한 심 씨 일가의 예술성에 대해 감탄하기도 했다.

반면 생각지도 못한 난관도 있었다. 한때 춤과 소리로 청진 권번을 주름잡았던 할머니를 코흘리개 시절부터 독선생으로 둔 까닭에 춤이라면 내심 자신 있었건만 전국에서 춤 좀 출줄 안다는 친구들이 모인 예고에서는 그녀의 춤은 한참 구식, 한마디로 ‘쇼크’였다.

“예고에 입학하고 나니 동기들 중에서 제일 못했어요. 시대에 뒤떨어졌던 거죠. 그때부터 할머니 춤하고, 현대의 춤을 함께 배웠어요. 할머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참 열심히 춤을 췄던 것 같네요”

남들이 천재성이라 부르는 유전인자에 노력이 합쳐지자 실력은 나날이 성장했다.

무용과를 졸업한 후에는 서산으로 내려와 할머니 곁에서 살았다.

   
▲ 공연 대기실에서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이 시절 할머니도 충남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가 됐고, 몇 년 후 손녀는 전수조교가 됐다. 둘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심씨 일가의 위대한 예술성이 이애리란 핏줄에 의해 다시 꽃을 피운 것이다.


◆아름다우나 위태로운 그녀들의 승무

 
   
▲ 생전의 심화영 선생. 88세까지 무대에 오르는 열정을 보였다.

심화영 선생은 88세(2000년)가 되어서야 승무 예능보유자가 될 수 있었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다.

그나마 평생을 수제자로 키워온 이애리 씨가 있어 위안이었고, 전수조교가 되자 한숨 돌렸다. 하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90세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무대에 오르곤 했지만 그 후로는 장한 손녀에게 남은 예기를 전수하는데 여생을 보냈다.

   
▲ 화려했던 20대 시절의 사진과 심화영 선생.

그러길 10여년, 동선(東善)이란 기명으로 청진 권번을 주름잡았던 심화영 선생은 지난 2009년(향년 97세) 고운 나비가 되어 떠나갔다.

함께 했을 때도 모든 여건이 좋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의 버선코와 쭈글쭈글한 손으로 허공을 가르던 손짓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할머니의 부재는 이애리 씨를 통해 다시 꽃을 피우려던 심화영류 승무의 중흥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예능보유자가 수년 째 공석인 지금 심화영류 승무는 더 이상 전수조교나 이수자를 배출할 수 없는 딱한 사정에 빠졌다.(전수조교와 이수자가 되려면 예능보유자의 추천서가 있어야 한다)

현재 전수조교 이애리 씨와 6명의 이수자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것도 3명의 이수자는 심화영 선생이 타계하기 전 신청한 덕에 가까스로 이수자가 될 수 있었다.

다른 분야에 비하면 턱 없이 모자란 인재풀이다.

하루라도 빨리 할머니의 뒤를 이어 예능보유자가 되려고 서두르는 이유다.

“승무는 특성상 춤에 대한 기본이 갖춰진 후에야 배울 수 있습니다. 시간이 더 오래 필요하다는 얘기죠. 그런데 지금처럼 후학을 키워낼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이 막힌 상태에서는 더 이상 저변확대를 기대하기는 어렵죠. 답답할 뿐입니다”

활로를 찾기 위해 지난해 처음으로 보유자 시험에 도전했지만 벽은 높았다.

이유는 ‘보유자가 되기에는 너무 어리다. 더 배워야 한다’는 것.

실망스러운 결과였지만 그녀는 곧 털고 일어났다. 자신이 주저앉으면 승무도 함께 끝나기 때문이다.

   
▲ 중고제 소리의 마지막 보유자 심태진 선생.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다.
실망하고 있을 시간도 별로 없었다. 마지막 남은 중고제 소리 보유자인 심태진(93·심상건의 딸) 선생과 최근에야 연락이 돼 지난 1월 미국으로 날아갔다.

아쉬운 대로 열흘간 중고제 소리를 온 몸의 세포에 각인하고 돌아왔다.

“올해 안에 다시 이모님을 찾아봬야죠. 이분이 떠나시면 중고제 소리도 명맥이 끊어집니다. 아마 하늘에 계신 할머니도 어렵더라도 제가 안고 가길 바라실 겁니다. 해야죠, 제가 살아 있는 한 승무도 중고제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변변한 연습실도 든든한 후원도 없는 척박한 현실이지만 이애리 씨가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눈앞에 닥친 어려움이 아니다.

다만 ‘할머니 마냥 춤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의문이 들 때가 가장 무서울 뿐이다. 역시 피는 못 속인다. 그 할머니에 그 손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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