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56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 정상의 만남이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남·북은 지난 세월 끊임없는 군사전이나 정치전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도 72년의 7·4공동성명과 91년의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이라는 관계 개선의 중요한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들이 역사의 현실 속에서는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의 장을 열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반복되는 위기를 잉태하여 왔다.

남·북 분단사의 흐름 속에서 모처럼 세번째로 찾아 온 남·북 정상회담의 기회가 과거 두 번의 역사적 체험처럼 위기를 낳지 않고 관계 개선과 통일의 전기를 마련하려면, 남과 북 그리고 국제역량 모두가 과거와 다른 새로운 발상의 정상회담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낙관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의 정상회담은 북측의 절박한 경제적 지원의 필요성, 남측의 신뢰성있는 포용정책, 그리고 주변 국제역량들의 측면 지원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과거와 달리 새로운 틀 속에서 성과있게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신중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가오는 정상회담은 전혀 다른 틀 속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우선 북측은 절박한 경제적 지원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쉽사리 유훈(유훈) 사고에서 신사고로 전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난관은 북측이 정상회담 개최 합의문에서 7·4공동성명을 강조하고, 남·북 최고위급회담의 국내외 홍보에서 조국통일 3대 헌장을 강조하는 것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북측은 3대 헌장의 김정일식 표현인 ‘민족자주의 원칙, 애국애족의 기치, 조국통일의 기치하의 북·남관계 개선, 외세지배와 반통일세력에 대한 투쟁, 온 민족의 접촉대화와 연대연합이라는 민족대단결 5대 방침’의 틀 속에서 정상회담을 치러 나가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북측의 이러한 노력에 대하여, 남측은 이미 베를린선언에서 천명한 것처럼 북한 경제회복 지원, 이산가족 문제, 냉전 종식과 평화 정착, 당국간 대화 정례화의 틀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미·일을 비롯한 국제역량들은 지역안보의 보장 속에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정상회담을 기대하고 있다.

6월의 정상회담이 낙관론의 3각구도에서 진행될 수 있다면 제3의 기회가 남·북관계 개선의 시금석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능성이 더 높은 신중론의 3각구도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면, 남과 북 그리고 국제역량들의 기존 구상을 넘어서는 21세기의 새로운 발상이 마련되지 않는 한, 한반도의 주기적인 기회와 위기의 악순환은 쉽사리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단기적으로 경제지원이나 이산가족 문제와 관련하여 일정한 성과가 있더라도, 근본 문제인 북측의 ‘민족자주의 원칙에 기반한 민족대단결’과 남측의 ‘냉전 종식과 평화 정착’, 그리고 국제역량들의 ‘지역안보’가 조화를 이루지 않는 한 중·장기적으로는 교류·협력의 부분적 성과가 모래성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세기 만에 모처럼 이루어질 정상회담에서 남·북은 현안인 경제 지원이나 이산가족 문제의 단기적 성과를 위한 논의를 심도있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더 핵심적인 과제는 남·북당국자들의 정상회담을 19세기식 ‘외세와 자주’의 이분법이나 20세기식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논의를 넘어서서, 21세기 한반도 생존·번영전략으로서 ‘자주적 세계화’ 또는 ‘지구적 민족주의’와 같은 복합전략을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러시아와 같은 국제역량의 활용 속에서 추진할 수 있는 가능성의 타진과 모색의 장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남·북의 이러한 진지한 노력이 없는 한 정상회담은 단기적으로 가시적 성과가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정치전의 비극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하영선 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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