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옷, 공포와 함께 찾아온 성경책
-홍길동의 활빈당이 나타났다는 소문 돌기도


◇사진설명:98년 5월 31일 기독교교회협의회 대표단이 평양의 신자 홍성길씨 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리는 모습. 교인들은 모두 김일성배지를 달고 있다. 북한은 97년 520여 개의 가정예배소가 있다고 발표한 바 있지만, 참여자들이 자발적 교인일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5년 몹시도 추웠던 함북 무산의 겨울. 배급이 끊긴 지 이미 오래여서 고달픈 하루하루를 이어나가던 우리 가족에게 뜻밖의 선물이 찾아왔다. 어머니가 중국에서 왔다는 어떤 조선족 아주머니를 만난 후, 부모님이 왠지 모를 긴장속에 열흘 남짓 무엇인가 의논하신 뒤였다.

두부밥, 밀빵, 기름튀기 등 500원어치(노동자 월급 100원 정도)는 넉넉히 될 음식이었고, 10벌 정도의 옷도 들어와 형과 나는 누더기옷을 벗고 중국산 새옷으로 갈아입을 수도 있었다. 어머니가 김치독 밑에 얼른 감추었지만 검은색 가죽표지의 책과, 그림이 그려진 책 두 권 이렇게 세 권의 책도 함께였다.

그때까지는 그 책이 장차 우리 가족을 두려움속으로 몰아넣게 될 성경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부모님은 먹고 입을 것을 얻기 위해 이 위험한 책들을 받아야 하는 부담 때문에 몹시 고민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의 아주머니가 우리 집을 밀고했다.

어머니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아주머니는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지극히 후회했지만, 어머니가 먼저 자신을 고발할까봐 너무나도 노심초사한 끝에 결국 자신이 밀고하고 말았다고 고백했다. 어머니는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아주머니의 행동과 심리상태에서 이상한 점을 느껴, 보위부가 닥치기 전에 서둘러 성경책을 자진 신고해 위기를 모면했다.

성경책을 처음 봤을 때 당황스러웠지만 호기심도 일었다. 김일성 저작선집보다도 멋진 장정에 지질이 북한 종이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밤이면 부모님은 숨죽이며 그 책을 펴봤다고 하는데, 내용은 마냥 고대신화처럼만 느껴졌다고 한다. 나 역시 신앙심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남조선'에서 왔다는데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묘하게 떨려왔다. 당시만 해도 우리에게 '남조선'이란 두렵고도 신비한, 미지의 지대일 뿐이었다.

그 조선족 장사꾼 아주머니는 무산읍내에 머무르면서 여러 사람에게 성경책을 전해 주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위부에 소리 없이 실려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보위부에서 실어갔다'고 하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당시만 해도 기독교에 연루된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총살하지 않고 조용히 실어가는 분위기였다.

그 사건 이후로 우리 가족은 언제나 감시에 시달려야 했고, 결국 딴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다가 북한을 탈출해 나는 지금 한국의 신학대학에서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으니 우연치고는 참 공교롭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들으니 99년경 함흥시에는 "홍길동의 활빈당이 활동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 앞에 쌀자루가 놓여 있는 일이 계속되었고, 또 언젠가부터는 "하나님을 믿으시오"라는 글귀가 함께 놓여 있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비밀리에 예배모임을 갖게 되었는데, 보위부와 안전부(보안성)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모인 장소를 귀신처럼 알아채고 습격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것이 북한에 존재한다는 비밀교회인 듯한데 그 교인들의 수가 수십만에 이른다는 얘기는 과장됐겠지만 목숨을 걸고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북한내에서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북한 최초의 교회인 봉수교회. 왼쪽에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건물과 공무원인 목사의 사택이 있다.
북한사람들은 북한에도 봉수교회(1988년 건립), 칠골교회(1992), 장충성당(1988) 등의 예배당이 있다는 사실을 거의 모른다. 장충성당 바로 옆에 사는 어떤 사람이 노래소리를 따라 성당쪽으로 갔다가 혼쭐이 난 일도 있다고 한다.

이들 교회에서는 김일성배지를 단 교인들이 "하나님을 믿어도 조선의 하나님을 믿으시오"라는 목사의 설교를 듣는다는데 일반인들은 얼씬도 할 수가 없다. 어쨌든 종교의 자유와 반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동시에 명시돼 있는 북한에서 기독교는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정리=김미영기자miyoung@chosun.com

▶김군일(21)씨는 함북 무산 출신으로 97년 북한을 탈출, 99년에 한국에 들어와 현재 협성신학대학 3학년에 재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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