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열린우리당 이철우(李哲禹) 의원의 ‘북한 노동당 입당’ 의혹을 둘러싸고 이틀째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 의원의 혐의에 대한 판결문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이와 관련, 9일 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 주성영(朱盛英) 의원 등 3명의 의원직 제명과 민·형사상 고소를 추진키로 했다. 1~3심 판결문에 따르면 이 의원은 지난 92년 10월 반국가단체인 ‘민족해방애국전선(이하 민애전)’ 가입, 회합, 편의 제공, 이적표현물 운반, 국가기밀수집탐지 방조 등 국가보안법 위반 5개 혐의로 구속기소돼 1~3심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이와 함께 이 의원이 다른 사람의 민애전 가입식에 사용하고 보관하던 조선노동당 당기(黨旗)와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몰수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또 이 의원은 민애전 가입 과정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에게 ‘충성 맹세’를 한 것으로 판결문에 기록돼 있다.

한편 이 의원이 입당했다는 민애전은 중부지역당 책임비서이던 황인오씨를 비롯한 관련자들의 확정 판결문에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의 위장 명칭으로 인정됐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내가 속한 조직이름도 몰랐다”며 “재판부가 몰수하라고 선고한 조선노동당기 등은 애당초 없었고, 그래서 1심 재판 때부터 존재사실을 부인했다”고 말했다.

조선노동당 입당 의혹이 제기된 이철우 의원에 대해 소속당인 열린우리당이 9일 오후 이 의원의 1992년 사건 판결문 중 일부를 "유실됐다"며 비공개했으나 여기에는 이 의원에게 불리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인해 열린우리당이 의도적으로 비공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국회간첩조작 비상대책위’(위원장 배기선 의원)는 이날 8쪽짜리 분량의 1993년 7월8일 서울고등법원 형사 3부의 판결문을 공개하면서 이 의원으로부터 조선 노동당기와 김일성 초상화, 김정일 초상화를 몰수했다는 내용이 담긴 2쪽을 공개하지 않고, “오래 보관하다보니 2쪽 부분만 유실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대위가 공개하지 않은 판결문 2쪽의 내용이 언론사에 알려지자 김현미 대변인은 “이 의원에게 확인해보니 조선 노동당기와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 대목은 ‘전혀 모르는 일이고, 그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뒤늦게 해명했다.

이에 앞서 열린우리당은 이철우 의원의 1992년 조선노동당 입당 의혹과 관련, 당시 판결문을 공개하고 “한나라당의 주장은 명백한 허위, 날조”라고 공격했다.

비대위는 회견을 갖고 “판결문을 검토한 결과 이 사건은 민주화운동 그룹에 이름을 하나 붙여 국가보안법을 적용시킨 것으로 과거 일반적인 국보법 위반 사건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비대위의 주장은 이 의원이 반국가단체 가입 혐의 등으로 기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한나라당이 주장하는대로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과 관련된 것은 아니라는 것.

비대위가 공개한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피고인이었던 이 의원은 국보법상 반국가단체가입과 회합,통신,이적표현물 운반,편의제공 및 형법상 국가기밀 수집탐지 방조죄로 기소됐다.

법원은 이 의원에게 징역 4년 및 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고, 조선 노동당기와 김일성 초상화, 김정일 초상화를 몰수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이 의원이 반국가 단체인 ‘민족해방 애국전선’에 가입한 점은 인정했지만, 한나라당이 주장하는대로 이 단체가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에 연관됐다는 것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김일성 주체사상, 혁명사상을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아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 전략 아래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는 것을 당면 목표로 삼는 반국가단체 ‘민족해방 애국전선’에 가입, 춘천 지역을 담당해 활동한 자로서 위험성이 적지 않지만 전과가 없는 점과 범행의 동기, 단체 가입동기, 지위, 활동경력, 범행 후 정황 등을 참작하면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양형은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이 의원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유기홍 의원(서울 관악 갑)은 “1980년대 후반 수사기관의 조작으로 ‘반제혁명당’, ‘구국전선’ 등의 이적단체가 수없이 등장했다”며 “당시 학생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중간에 한 명을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중부지역당과 민애전을 엮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을 ‘조선노동당에 입당했으며, 간첩’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게 된 계기가 된 주간신문 미래한국신문의 발행인 김상철 변호사는 9일 이 의원에 공문을 보내, 정확한 보도를 위해 법원 판결문 사본을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다.

김 발행인은 “본 미래한국신문이 2004. 12. 8. 배포를 시작한 2004. 12. 11자(제127호) 신문 1면 및 당일 올린 인터넷 미래한국 기사(제목: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 北조선로동당 가입 확인’)에 대해 의원께서는 국회 본회의에서 ‘조선노동당 가입 부분은 무죄를 받았고 민족해방애국전선이라는 반국가단체에 가입한 혐의가 인정돼 징역 4년을 살았다’고 해명하였다”고 말했다.

김 발행인은 이어 “귀 의원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본지로서는 현 단계에서라도 마땅히 귀 의원의 명예보호를 위하여 관련 사실을 보도할 의무가 있다”라며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본인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그 등본을 떼볼 수 없으므로 이에 본지는 귀 의원께서 판결문을 소지하고 계시다면 그 사본을 교부 또는 송부하여 주시기 바라와 이에 협조 요청을 드린다”고 말했다.

김 발행인은 “미래한국신문의 관련 기사로 인하여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와관련 이 의원실의 보좌관은 chosun.com과의 통화에서 “사과 공문이라고 보지않으며, 협조요청 문건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9일 국회에서 “어제 국회 본회의장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 이철우 의원이 직접 해명했지만 국민들은 이를 납득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며 이 의원에게 공개 질의를 제시했다.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 관련 진상조사단’은 질의서에서 ▲92년 북한 조선노동당에 현지 입당해 당원부호와 조직명을 받았다는 보도의 사실 여부 ▲이 의원이 가입한 사실을 인정하는 ‘민족해방애국전선’이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의 대외명칭이라는 것에 대한 해명 ▲지난 5월 25일 운동권 선배들과 회합한 자리에서 ‘천하의 빨갱이가 휴전선 옆에서 당선됐다’고 말했다는 보도의 사실 여부 등을 물었다.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간첩조작 사건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배기선 의원)는 9일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철우 의원 관련 허위사실을 날조한 한나라당 소속 주성영 박승환 김기현 의원에 대해 10일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발하고, 김정훈 의원에 대해서는 더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대위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말하고 “이와함께 해당 의원들에 대해 민사소송 제기 및 국회 윤리위 제소를, 허위 사실을 보도한 주간지 ‘미래한국’ 등 관련 언론에 대해서는 확실히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는 이어 “한나라당측 주장이 허위라는 것을 밝히는 명백한 증거를 공개하겠다”면서 지난 1993년 7월 서울 고등법원의 2심 판결문을 기자단에 배포했다.

우리당 문병호 의원(인천 부평 갑)은 판결문에 대한 설명에서 “수사 단계에서 (이철우 의원이)조선노동당에 가입해 번호를 받았다는 내용이 있는지 모르나 1차 공판에 전혀 내용이 없는 걸로 봐서 검찰이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도서 목록을 국내 운동세력에 전달한 그야말로 간첩행위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밝혔다.

주성영 의원 등은 8일 국회 본회의에서 5분 발언을 통해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이 1992년 북한 조선노동당에 입당해 당원번호까지 받았다”고 주장했었다.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 여야는 전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에 의해 제기된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경기 포천-연천)의 북한 노동당 가입 의혹을 둘러싸고 날카롭게 대치했다.

열린우리당은 이 의원의 북한 노동당 가입 의혹 제기를 ‘국회 간첩 조작사건’으로 규정하고 관련 야당의원에 대한 제명과 민·형사상의 고소 및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사과촉구 등 강경대응키로 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은 이날 오전 10시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간첩 조작발언은 면책특권 뒤에 숨어 동료의원의 등에 칼을 꽂은 것”이라며 “박근혜 대표는 이철우 의원과 국민에게 사과하고, 한나라당 주성영·박승환·김기현·김정훈 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박근혜는 사과하라’ ‘국회 간첩조작 규탄한다’는 어깨 띠를 두르고 대회에 참석했으며, 규탄대회 내내 한나라당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간첩 의혹은 낡은 국가보안법을 지키겠다는 한나라당의 조직폭력”이라며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국보법의 폐해와 이를 폐지해야 할 당위성이 분명하게 확인된 만큼 당력을 총동원해 국보법을 조속히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장영달 의원(전주 완산 갑)은 “유신잔당 한나라당은 즉각 해체하라”고 소리를 높였고, 장향숙 의원(비례대표)은 “희망을 갖고 들어온 17대 국회에서 제발 일 좀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대회 직전 열린 열린우리당 의원 총회장은 야당 규탄 대회장을 방불케 했다. 이부영 의장은 “어제 이철우 위원에게 가해진 폭력적인 간첩조작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며 “고장난 기계 같은 한나라당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관련 의원들은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이철우 의원은 “법원의 판결문에 간첩·노동당 가입이라는 말은 없다. 수사기록은 모두 안기부에서 고문을 통해 기획·조작한 것”이라고 말했고, 한나라당 간첩조작사건 비상대책위원장 배기선 의원은 “이번 기회에 국민과 민주주의를 모독하는 근거 없는 색깔론은 뿌리 뽑자”고 말했다.

이에대해 한나라당은 이날 오전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노동당 가입 논란에 대한 철저한 지상규명을 열린우리당에 요구했다. 박근혜 대표는 “여당 의원이 조선노동당 사건으로 실형을 받고 복역한 뒤 공천까지 받았다”면서 “과거사 규명도 중요하지만 살아 있는 이런 사실부터 진상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또 여당의 국보법 폐지안 강행 추진 가능성과 관련, “국보법은 당과 당 지지자들을 위해서만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지켜내야 하는 일”이라며 의원들을 독려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도 “이철우 의원의 노동당 가입 사건으로 온 국민이 충격에 휩싸여 있다”면서 “열린우리당은 이에 대해 해명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외관상의 강경 기류와는 달리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철우 의원 관련 발언이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최원규기자 wkchoi@chosun.com
/금원섭기자 capedm@chosun.com
/진중언기자 jinmi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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