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우리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오른쪽)이 국회법 책자를 손에 들고 자신이 위원장 직무대행으로서 국보법 폐지안을 상정했다고 외치자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왼쪽)이 손으로 막고 있다.
/정경렬기자 krchung@chosun.com

열린우리당이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소속 최연희(崔鉛熙) 위원장을 제치고 물리력으로 국가보안법 폐지안의 상정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과 보좌진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그러나 여당이 이렇게 밀어붙인 결과는 국회법적으로 효력이 없거나 효력이 있다 해도 이날 하루에 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오후 4시9분쯤 여야 의원들이 위원장석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와중에서 열린우리당 최재천(崔載千) 간사는, 법사위원장이 고의적으로 의사 진행을 거부한다면서 자신이 위원장 직무대행임을 선언한 뒤 국보법 폐지안 2개와 형법보완안 등을 일괄 상정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이것으로 국보법 폐지안이 상정됐다고 주장했으나, 한나라당은 “위원장이 정식으로 개회 선언을 하지 않았고, 위원장석에서 안건을 선포해야 한다는 국회법 110조를 지키지 않았으므로 법적으론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반박했다.

여당 주장대로 국보법 폐지안이 법사위에 상정됐다고 해도 효력은 이날 하루로 그치며 다음 회의 때 다시 상정하는 절차를 밟아야 법사위가 논의할 수 있다고 다수의 국회 관계자들이 지적했다.

열린우리당 김현미(金賢美) 대변인도 “오늘(6일) 법사위에 상정된 국보법 폐지안은 오늘의 일정에만 효력을 미친다”며 “중요한 것은 국보법 폐지안이 역사상 처음으로 정식 안건으로 법사위에 올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은 여야 충돌 뒤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국보법 문제는 여야 간 대화와 절충을 통해 좀더 의견을 접근시켜 달라”며 여당의 ‘날치기 상정’ 시도에 사실상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 국보법 상정 몸싸움 6일 국회 법사위에서 위원장석을 차지하려는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연합

한나라당 의원들만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오후 5시 25분쯤 최연희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5시 30분까지는 5분이 남았으나 행정 절차는 갖추겠다. 입법 조사관은 보고를 해 달라”며 회의를 시작했다.

최 위원장은 입법 조사관의 예산결산 소위원회 관련 보고가 끝난 뒤 열린우리당의 국보법 폐지안 날치기 상정과 관련, “오늘 법사위에서 토론을 하고 위원장으로서 납득이 되면 제 소신대로 의안으로 상정하려고 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최 위원장은 이어 “국회법에 따르면 위원장 없이 개회가 가능한 경우는 예외 사유인 긴급·불가피한 예외 사유를 제외하고는 예산안 심의와 관련된 법안으로 한정된다”며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상정을 강행한 국보법 폐지안 외 총 11개 법안은 예외 사항이 아니다”라고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부인했다.

최 위원장은 또 “내일 7일 법사위는 본회의에 상정한 59건의 법률안을 심의해야 한다.

그 중에는 민생법안과 정부조직 관련 법안 등이 포함되어 있다”며 “정부가 일할 수 있도록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오늘 안타깝게도 한나라당 위원들만 참석하고 다른 당 의원님들은 지금 적어도 1시간 가까이 시간을 드렸음에도 참석하지 않아서 오늘 회의는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나라당 의원들의 의사진행 발언이 이어졌으나 오후 6씨쯤 산회가 선포됐다.

김연희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했으나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전원 자리를 뜬 채 4시 50분 현재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에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경북 영주)은 “열린우리당 의원이 전원 참석을 하지 않은 게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위원장께서 입장해서 개회를 선포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회의 절차를 하는 게 마땅하다”며 회의 진행을 요청했다.

그러나 최 위원장은 “법사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부터 어떤 한 쪽 의견만 듣고 회의를 진행한 적이 없다”며 “전문 위원실에서 연락중이니 5시 반까지 기다리자. 참석하지 않으면 진행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오후 4시 5분쯤 열린우리당 최재천 간사가 한나라당 김재원 의원이 앉아 있는 법사위원장석으로 돌진하며 “뭐하는 짓이야, 법사위 아닌 사람들은 나가”라고 외치자 순식간에 10여명의 여야 의원들 사이에 위원장석을 둘러싸고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여당 의원과 보좌진들이 김재원 의원을 위원장석에서 끌어내자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이 재빨리 위원장석을 다시 차지했다.

이 와중에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위원장석 위에 엎드려 한나라당 의원들을 저지했다. 노 의원은 “뭐야 이거, 이 나쁜 놈들아”, “남의 회의에 와서 뭐하는 짓이야”라고 외치기도 했다.


◇ 의사봉 숨기고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이 위원장석의 의사봉(점선 안)을 허리에 감춰 놓고 있다./동아일보 제공

5분 정도 치열한 몸싸움 끝에 최재천 간사는 “위원장이 없으니 내가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상정합니다”라며 의사봉이 아닌 손바닥으로 책상을 3번 두드리고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선언했다.

그러자 열린우리당측에서는 “통과됐다” “우리도 날치기 한번 해봤다”라는 말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고 한나라당 일부 관계자들은 “무효”라고 크게 외쳤다.

한나라당 김재원 의원은 “법사위원장이 곧 올텐데 뭐하는 짓이야”라고 외쳤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개회 선언을 안했으니 날치기도 아니다. 날치기를 하려다 난동만 부린 것” 이라며 “우리는 민자당·신한국당 때 날치기를 해도 개회 선언은 했다”고 말했다.

한편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가운데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은 “(최연희)위원장이 곧 도착해서 법사위가 곧 개회될 예정이니 기자들은 포토라인을 지켜달라”라고 말했다.

이어 28분쯤 최 위원장이 회의장에 들어와 “이래서는 회의 진행이 안된다. 현역 의원들은 그냥 있고 국회 등록 출입기자 외 나가 주세요. 사무처 직원과 보좌진도 나가세요”라며 회의장을 정리했다.

오후 4시 현재 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앞두고 여야의 충돌이 예상되는 국회 306호 법사위 회의실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한나라당 최구식, 정문헌, 이병석, 박세환 의원 등 5명은 법사위원이 아닌데도 일찌감치 회의실에 들어와 국무위원석을 선점한 채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100여명의 취재진들은 아직 채워지지 않은 열린우리당 의원석을 둘러싼채 여당 소속 법사위원들이 입장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또 법사위측은 방송 생중계를 막고 있으나 방송 카메라 수십대가 포진해 촬영하고 있다.

한편 회의장 입구에서는 법사위측이 출입기자와 법사위 위원, 법사위 소속 공무원이외에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입구에 모여있던 10여명의 열린우리당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일단 기다려보자. 스탠바이 하고 있어야지. (법안 상정을 위해) 99㎏ 이상되는 사람들이 서있다”라는 농담조의 말들도 오고갔다.


◇ 與 "상정됐다" 환호 6일 법사위 국보법상정처리가 끝나자 복도에 있던 열린우리당 보좌관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정양균기자

열린우리당 김현미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주 최연희 법사위원장이 명백한 의사진행 기피로 자격을 상실한 만큼 국회법에 따라 열린우리당 최재천 법사위 간사가 직무 대행해 안건을 상정할 것”이란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이로써 여야의 법사위에서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둘러싸고 또다시 물리적인 충돌이 예상된다.

6일 오후 4시로 예정된 법사위 전체회의를 앞두고 주성영·장윤석·김정훈·박승환 의원 등 한나라당 소속 국회법사위원들은 오후 1시 30분쯤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회견을 갖고 “여당의 국가 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온 몸으로 막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에 반대하는 한나라당 법사위원들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기자회견문에서 “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철회하고, 민생법안과 새해예산안 처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 野 "날치기 쇼" 분노 한나라당 의원 보좌관과 당직자들이 6일 국회 법사위 회의장 밖에서 국보법폐지안이 상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전기병기자

주성영 의원(대구 동 갑)은 회견에서 “열린우리당이 국보법 폐지안 긴급 상정 사유로 국민의 인권 등 기본권 침해를 말하는데, 참여정부 출범 이후 국보법에 의한 인권 침해는 없다”며 “따라서 열린우리당이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물리적으로 시도하는 것은 긴급 사유에 해당하지 않고 여야 합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위법·불법적 시도”라고 말했다.
/박두식기자 dspark@chosun.com
/김재은 기자 2ruth@chosun.com
/서현경 인턴기자 서강대3년·loca2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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