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은 한국의 공산화를 방지한 것이지만 세계의 공산화를 방지했다는 측면에서 세계사적 의미도 있다.

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이 발발하자 미국의 대응은 단독적인 것이 아니고 유엔을 통한 것이었다. 이는 1947년 한반도 문제를 국제기구로 가져갔으며 남한의 독립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이 유엔과 연계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유엔은 동맹국들과 중립국들에 의한 집단행동을 위한 장을 제공함으로써 전쟁을 공간적으로 제한했으며 51년 7월 이후엔 강도 면에서 제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는 적에 대한 군사적·외교적 압력수단 사용 면에서 미국에 규제를 가함으로써 전투기간을 연장시키게 됐다. 또 한국전이 유엔을 효과적인 집단안보기구로 전환시키는 데 실패했다.

한국전은 냉전기간 중 유엔이 군사적인 공격을 받은 국가를 방위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행동했던 유일한 경우가 됐다. 한반도에서의 유엔의 반응은 광범위한 회원을 가진 국제기구로서 유엔을 실질적인 소멸로부터 구원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격퇴하는 데 있어 유엔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중공의 유엔 가입을 아직도 거부하고 있을지 모르며, 이같은 상황에서 소련은 유엔에서 탈퇴, 자신이 주도하는 별도의 국제기구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유엔은 처음엔 미국 입장의 합법화를 돕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50년 6월 북한의 공격을 예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수개월 후 중공군의 개입도 막지 못했다.

또 처음엔 한반도 밖으로 전쟁을 확대하려는, 그리고 나중에는 한반도 자체에 최대의 압력을 작용하려는 미국의 의지를 꺾는 데 기여, 결과적으로 공산 측이 전쟁을 계속하도록 고무했다.

/윌리엄 스튜억 미 조지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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