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3일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여부를 놓고 하루종일 신경전을 벌였지만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한나라당 소속인 최연희(崔鉛熙) 법사위원장은 이날 자정 직전 "법사위는 여야간 협의를 통해 모든 것이 이뤄졌다"며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제 무능력을 실감한다"며 산회를 선포했다.

최 위원장이 산회를 선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는 순간 열린우리당 선병렬(宣炳烈) 의원이 위원장 석으로 달려가 항의하는 등 여당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산회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최 위원장은 명백히 적법하게 제출된 동의안 처리를 기피했기 때문에 여당 간사가 언제든 위원장 직무를 대신할 수 있게 됐다"며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적법한 절차에 의해 회의를진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당 간사인 최재천(崔載千) 의원은 "의사일정변경 동의안이 이런 식으로 처리되지 않은 선례를 본적이 없다"며 "강행처리나 단독처리로 비난받을 여지는 만들지 않고, 협상과 타협의 정신을 지켜나가겠지만 국회법 절차에 따라 밀어붙이겠다"고 말했다.

회의장에서 대기하던 우원식(禹元植) 의원은 "한나라당이 민주주의의 역사를 아느냐"며 "역사가 용납치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날 두차례 정회를 거쳐 오후 8시30분 속개될 예정이었던 전체회의는 3시간 후인 11시30분께 속개됐다.

최 위원장은 회의 속개가 지연되는 동안 열린우리당이 의사일정에 추가시켜줄 것을 요구한 11개 법안 가운데 국가보안법 폐지안과 형법 개정안을 제외한 6개 법안만 상정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열린우리당 이종걸(李鍾杰)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 원내수석부대표는 이 같은 절충안을 논의했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국보법 폐지안을 상정하되, 이날 회의에서는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만 청취하고 여야간 합의를 통해 처리 일정을 결정하자는 방안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가 장외에서 협상을 벌이는 동안 회의장에서는 여야 법사위원들의 신경전이 계속됐다.

한나라당 장윤석(張倫碩) 의원은 여당이 제출한 의사일정변경동의안이 국회법 77조 규정대로 이유서가 첨부되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한 뒤 "절차적 하자가 있기 때문에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리당 우윤근(禹潤根) 의원은 "국회법 77조는 훈시규정인 것 같다"며 "의사일정변경동의안은 처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魯會燦) 의원도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처럼 법사위에 법이 없는 것 같다"며 "국회법대로 의사진행변경동의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여야 법사위원들이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타 상임위 소속 여야 의원들도 법사위 회의장에 들려 신경전에 가세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론자인 한나라당 김용갑(金容甲) 의원은 "북한의 한 매체는 내가 국보법 폐지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매국 5적'으로 선정했다"며 "국보법 폐지안의 상정은 물리적 저지뿐 아니라 화학적, 원자력을 써서 막겠다"고 말했다.

국보법 완전폐지론자인 열린우리당 임종인(林鍾仁) 의원은 "김용갑 의원은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지만 나는 어정쩡한 국보법 폐지에 반대한다"며 "우리 당의 당론인 형법보완안도 마음에 안든다"고 말했다.

국무위원석에 앉은 두 의원이 회의장 분위기를 주도하자 민주노동당 노 의원이 "마치 국보법 청문회를 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나라당 주성영(朱盛英) 의원은 여당 의원들이 국보법 폐지의 당위성을 주장하자 "국보법을 폐지해 한총련과 같은 순정품 좌파가 들어온다면 짝퉁좌파인 열린우리당은 설 곳이 없어진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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