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주용중기자】 미국이 이달 말 발표할 테러 지원국 명단에 북한을 그대로 포함시키기로 함으로써 작년 9월 베를린회담 타결 이후 고위급 회담을 향해 접점을 좁혀가던 양국 사이에 일단 ‘걸림돌’이 생겼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의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빠지는 것이 미·북 고위급 회담 성사의 징검다리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주창준(주창준) 주중(주중)북한대사가 지난달 “미국이 북한을 테러리스트 국가로 규정하는 한 미·북 고위급회담은 불가능하다”고 언급한 것을 꼭 ‘엄포용’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지난 87년 KAL기 폭파 사건을 일으킨 이듬해인 88년부터 미국의 테러 지원국 명단에 줄곧 포함됐던 북한은 그동안 명단 삭제를 미국측에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북한은 지난 96년부터 미국 행정부에 테러행위에 관여치 않겠다는 문건을 수차례 은밀히 건네기도 했다. 양국은 이에 따라 지난 3월 뉴욕에서 열린 미·북 고위급 회담 예비회담에서 이 문제를 의제로 올린 이후 줄다리기를 계속해왔다.

미국은 이번에 취하게 될 조치가 미·북 고위급 회담에 결정적 장애요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해 북한이 바라는 ‘융통성’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미·북 고위급 회담에 대한 ‘마지노선’을 분명히 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이 지난 14일 미사일 기술을 중동에 수출한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를 발표하면서 대북 경제 제재 완화가 이로 인해 늦춰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미·북 고위급 회담을 위해, 테러와 미사일 확산에 대한 ‘미국적 원칙’의 예외를 만드는 양보는 하지 않겠다는 태도인 셈이다.

향후 관건은 북한이 이같은 미국의 입장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달려 있지만, 북한이 미·북 고위급 회담을 철회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외교 소식통들은 보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한 지원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의 손을 북한이 아예 뿌리칠 수 있는 사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초 이르면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로 예정됐던 북한 고위급 인사의 미국 방문은 양국간 협상이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상당 기간 늦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오는 6월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본 후 미·북 미사일회담부터 개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한국 외교당국은 미·북간에 형성된 한랭전선이 남북 정상회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이다. 두 회담은 기본적으로 별개라는 인식이 한·미간에 공감대를 이루고 있지만, 남·북 관계 개선보다 미·북 관계 개선에 중점을 두어왔던 북한이 최근의 유화전략에서 선회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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