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킹스 연구소의 마이클 오한론(Michael O’Hanlon) 선임연구원은 99년 ‘나이트 라인(Night Line)’을 비롯한 미국 TV의 뉴스 프로그램과 신문에서 한창 뜨겁게 달궈졌던 ‘나토의 세르비아 폭격논쟁'에서 신예 국방전문가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그는 당시 폭격이 곧바로 승리를 담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며, 지상군 투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주도해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39세인 그는 ‘90년대 후반의 미국 국방계획' 등 4권의 저서를 이미 냈고,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 등 국제문제 전문잡지의 단골 기고가로 자리잡고 있다.

그의 논문 제목 중 일부를 훑어보면 ‘기술발전이 해외주둔 미군을 불러들일 수 있는가' ‘중국 군대의 실상' ‘인본주의적 군사개입의 기준' ‘평화의 시대와 전쟁의 기술' 등으로 다양하다.

전쟁과 국방 문제에 관한 한 전방위적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평을 학계에서 듣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등 주요 신문에 미국 국방정책, 보스니아와 이라크 사태, 미-일 동맹 문제 등에 대해 기고해왔다.

특히 89년부터 6년간 미 의회 예산국(CBO) 국가안보 분과의 국방-외교정책 전문위원으로 일하면서 국방예산 전문가로 자리잡았다. 클린턴 행정부의 국방정책을 평가하는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국방정책 형성에도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국제 안보(International Security)' 98년 봄호에 ‘북한의 도발 방지:남한 방어가 국방부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이유'라는 글을 실어 한국내 전문가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현재 컬럼비아대학과 조지타운대학 겸임교수인 그는 프린스턴대에서 물리학과 기계공학을 공부한 뒤 우드로 윌슨 센터에서 국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특이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대학 졸업 후엔 콩고에서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2년간 활동했다.

/주용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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