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술가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최초이자 유일의 미술대학인 평양미술대학은 6ㆍ25때 개마고원 깊숙한 곳으로 옮겨서 휴전이 되고도 한참이나 지나서 평양으로 돌아왔다. 졸업 후에도 각종의 제작소에 소속되어서 안정적인 위치에서 작업한다. 이를 통해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북한이 얼마나 미술가에 대해 배려하는지 알 수 있다.

◇정창모 作, 조선화 '광복의 햇빛을 기다리며 분계선의 옛 집터에서', 1985년 국가미술전람회 출품작. 명암법과 원근법을 적용하면서도 밝고 맑은 분위기를 살렸다.

전문교육을 받는 미술대학의 응시자는 물론 미술에 대한 높은 소양을 갖춘 사람이며, 졸업 뒤에도 대우가 좋으므로 우수한 사람들이 지원한다. 교육과정은 남한과 비교하여 매우 체계적이고 철저하다. 단적인 예로 이른바 기초교육인 데생에서 우리처럼 유럽 문화권의 역사인물이나 신화인물의 조각상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와 골격이 다르다는 점보다는 사실과 달리 이상화되거나 영웅화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북한의 미술작품에서 소재에 따라서 이러한 태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이를 피하고, 자기 주변의 사람과 삶을 그린다는 것이 중심과제이므로 현실적인 사람으로 석고상을 만들고 이를 거듭 그림으로써 기초실력을 닦는다. 미술관에는 최근의 작품도 국가보관 작품으로 수용되어 일반에 보여지고 있다. 이를 위한 선정과정이 국가미술전람회다.

주체사상과 별도로 북한은 미술에서 주체적인 성격을 대단히 강조한다. 자기의 미술은 "조선미술"(조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줄여 말한 것)이라 하여 정체성을 확고히 하였다. 그리하여 일찍부터 조상 대대로 해오던 전통적인 종류의 그림을 "조선화"라고 하여 중심적인 장르로 설정하였다. 이런 태도는 지난날 동아시아에서 유일의 독립국이었던 일본이 처음 보인 이래, 1949년 건국한 중국이 뒤따랐다. 북한도 이른바 전통적인 그림에 대하여 이들 나라에 이어 자기 국명을 붙였다.

우리의 경우 식민지시대 초기부터 일본 식민당국이 "동양화"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해방 후 최근까지 써오다가 근래에 한국화로 바꾸었지만, 일반인의 인식이나, 대학의 학과명 등에는 아직도 남아 있다. 이런 태도는 민족주의가 서구에 비해 뒤늦게 확립되었고, 그런 만큼 문화적 정체성을 좁게 설정했던 동아시아의 특수성 탓이다.

북한의 조선화가 전통적인 그림의 종류라고 하였지만 나타난 결과는 흔히 생각하는 것과 무척 다르다. 서양의 르네상스 때 시작되어 19세기 인상파시기에 완성된 원근법이나 투시법 같은 외관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방법을 중심적으로 쓰는 동시에 여백을 활용하면서 다소 밝은 화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받는 인상은 여백이 많은 사진 같거나, 누구의 그림이든 거의 비슷한 화면이다. 개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말이다. 개성을 추구하는 것이 마치 궁극적인 목표처럼 되어서 도무지 무엇을 그렸는지 모르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미술이 비슷비슷한 것을 넘어서 획일적으로 보이는 것 또한 문제다.

한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수준이 변화하면 표현도 달라질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점으로 보면 북한의 지금까지의 미술은 어떤 면에서 일정한 성장을 거친 뒤의 정지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고도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미술이 마련한 토대는 매우 중요하다. 한 사회의 건전한 통합을 위하여 참고할 일이다. 우리의 경우 대중의 존재는 무시되다시피 하고, 첨단이다 실험이다 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까지 보인다.

우리가 서양화라고 하는 것을 북한에서는 유화라고 부른다. 동아시아 나라들이 전통적인 그림에 자기 국명을 사용하게 된 마찬가지 순서로 서양화라고 부르던 것을 유화로 고쳤다. 이런 점으로 보면 실제 성과는 별도로 하더라도, 아직도 이 분야에 대한 우리의 인식태도는 개화기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조선화와 유화라고 하는 것과 관련하여 "조선적인 것"을 확립하고자 하는 것이 북한 미술의 다른 특징적인 면모다. 그리하여 조선화는 물론, 유화도 "조선적인 유화"라고 하여 서구가 발전시킨 것과 다른 민족적인 유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1960년대부터 상당했다. 그러나 남북을 떠나 동아시아 전체로도 매우 중요한 실험이었던 이런 움직임은 조선화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고민은 남북은 물론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남한의 미술이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외래에 추종하여 답보하는 것과 비슷하게, 북한의 미술은 바람직한 목표들을 설정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아직 본격적으로 실행, 성공하지는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최석태ㆍ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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