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12살이었다. 1966년 중국을 휩쓰는 문혁의 광풍이 불기 시작했을 때 소년은 아무런 의심 없이 홍위병 대열에 가담했다.
할아버지가 의화단 사건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인민해방군에 투신한 혁명가 집안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잇기 위해서였다.
집회의 구호와 노래에 자극을 받은 그는 지향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 부잣집을 공격하고 군 장성을 자살로 몰아가는 인민재판에 참석했다.
아버지와 여동생의 책을 훔쳐 불태운 그는 분노한 가족 앞에서 “혁명을 위해 책을 태웠다”고 변명한다.
열두 살 꼬마의 입에서 나온 ‘혁명’이란 말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분노를 바꿔 기쁨을 연기해야 했다. 정치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속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문혁의 광기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유 없는 분노의 결과로 생면부지의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며 그는 움츠러들었다.
그는 “남의 집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데 동참한 뒤 며칠 후 친구에게 ‘우리가 습격했던 집이 누구 집이었느냐’고 물었다”고 부끄럽게 고백한다.
이 책은 문화대혁명의 광풍에 휩쓸렸던 홍위병 출신의 한 지식인이 겪은 일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문혁 시기 중국의 혼란을 정치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기록한 책들은 여럿 있었지만, 이 책처럼 실제로 당시를 살았던 자신의 경험을 증언한 책은 찾기 힘들다.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문혁은 중국인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저자는 문혁이 자신의 청년기를 어떻게 유린했으며, 부모와 자신을 생이별시켰고, 사랑하는 이와 가슴 아픈 이별을 하게 했는가를 기록한다.
위대한 지도자를 보위한다는 구호 아래 홍위병끼리 전쟁이 시작됐고, 홍위병끼리 서로 죽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소년도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산시(陝西) 오지의 농촌마을로 하방(下放)당했다.
부모와 생이별한 열네 살 소년의 인생은 그 후 좌절과 굴곡으로 얼룩졌다. 농부로 3년을 썩고 난 뒤 옌안(延安)으로 옮겨 공장 기술자로 변신했다.
1977년 마오를 비판한 인사와 교류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다시 체포됐다. 계속되는 고난과 인간성의 파괴를 목도한 그는 광기의 나라를 떠나고 싶었다.
아내 리링(李玲)과의 만남과 이별은 문혁이 낳은 비극의 드라마다. 홍위병 동료들과 부르주아 외과의사의 집을 덮친 그는 의사의 둘째딸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리링의 아버지는 홍위병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남은 가족은 거리로 쫓겨났다. 사랑하는 이의 아버지를 죽게 한 원수가 된 그는 혁명과 사랑의 이율배반에 괴로워하다 그녀를 잊기로 했다.
운명은 훗날 공장 노동자가 된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했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렸다.
마오가 죽고 문혁이 잦아든 후 저자는 이혼한 리링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러나 그녀가 유방암으로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아내의 죽음은 혁명의 이상보다 사랑의 감정이 인간에게 더 고귀한 가치임을 거듭 깨닫게 했다.
책은 문혁 이후 저자의 인생행로를 펼쳐 보이고 있지만 그 기록이 시사하는 것은 개인 차원을 뛰어넘는다.
1984년 마침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그는 “더 이상 혁명가 흉내를 내지 않아도 좋았다”며 마지막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에 대해 저자는 “자유와 새로운 삶을 축하하는 눈물”이라고 적고 있다. 그는 지금 미국에서 재혼해 대학교수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정치 지도자의 불순한 대중조작이 빚어낸 비극이 개인의 사랑과 죽음, 좌절과 탈출과 얽혀 장엄한 드라마로 펼쳐지는 작품이다.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문화대혁명
중국을 10년간의 광기로 몰아넣은 문화대혁명을 이해하려면 문혁의 발발 배경부터 알아야 한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자신이 주도한 대약진운동이 엄청난 아사(餓死)사태를 초래하며 실패하자 국가주석직을 류사오치(劉少奇)에게 넘긴다.
그러나 마오는 정치적 권위를 되찾기 위해 류사오치 등 반대파를 숙청하기로 결심한다.
사인방(四人幇)을 앞세워 문혁을 일으킨 그는 “공산주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모든 합법적 절차를 무시하라”며 인민을 유혹했다.
마오가 주장한 ‘조반유리’(造反有理·모든 반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반대 자체를 절대 가치화함으로써 홍위병들의 만행을 합리화시켰다.
순진한 청년들이 마오의 정치 놀음에 이끌려 군중의 열기 속으로 뛰어들었고, 기존 질서와 권위를 상징하는 모든 것을 파괴해 버렸다.
마오가 원한 대로 류사오치가 죽었고, 덩샤오핑이 실각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중국 전역에서 동네 노인과 선생이 살해되고, 학자가 쫓겨났으며 책이 불태워졌다. 극심한 혼란을 초래했던 문혁은 마오가 죽고 사인방이 체포된 1976년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