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국장

요즘 진보세력과 보수세력 간의 전투 양상을 보면 도박판 판돈을 키우는 쪽으로 달리는 양상이다. 내기를 키워 최후의 순간에 상대방을 한 방에 몰락시키려는 결의를 느낄 수 있다.

올 들어서만 이미 대통령 탄핵사태와 행정수도 이전 문제로 헌법재판소에서 1승1패의 전적을 기록했건만, 양측 모두 그걸로 만족하며 공존하는 길을 찾지 못한 채 판을 부풀리고 있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과 그 일파(一派)를 보면, 이들은 다수 여론과 정면 승부하기로 이미 선언했다.

국가보안법, 사학법(私學法), 친일청산법, 언론관련법 등 4개 법안에 국민의 다수가 반대 의사를 표시했지만, 연내 반드시 국회를 통과시키겠다고 수차례 다짐했다.

기득권자와 강남 사람들에 대한 공격에 만족할 수 없었는지, 언론계·종교계·사법부 등에 가차없이 칼과 화살을 쏟아붓고 있다.

이처럼 여러 분야에서 전선을 만들고 다수 여론과 맞서 싸우는 것이 무모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필경 바보이고, 그런 바보 정권이라면 2년 전에 권력을 챙기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권은 두 차례 보궐선거에서 패배, 민심 이반(離反)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뻣뻣하게 고개를 세우고 강공(强攻)전략을 계속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민심이라는 큰 상대와 진검 승부, 민심을 단번에 뒤집어보려는 전략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헌법 때문에 수도 이전이 안된다면 거기에 승복하기보다는 헌법과 사법부 그 자체를 타도하고, 노동법이 노동자들에게 불리해 지킬 수 없다면 그것에 굴복하기보다는 아예 그 틀 밖으로 벗어나 노동법에도 없는 항목을 만들어 노사협상을 유도하는 식이다.

이런 큰 판에서는, 경기(景氣) 사이클이 더 하강할까 아니면 장기 불황으로 갈까에 대해 밤잠을 설칠 필요가 없다. 도리어 불황은 그들에게 더 횡재할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젊은 실업자들과 달동네 빈민들을 예비 혁명군쯤으로 육성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광장에 낙오자들을 대거 집결시킨 후, 월 300만원짜리 고액 과외로 서울대에 아들딸을 입학시키는 강남 부모들이나, 하와이에 500만달러짜리 리조트 빌라를 구입하려고 외화를 빼돌린 사학재단 이사장을 공격해보라.

계급갈등·빈부격차·지역감정을 극한까지 자극하면 지난 50여년간 다져온 기득권 체제를 통째로 뒤집을 수 있다고 그들은 판단한 것일까.

다수 의견을 깡그리 묵살한 채 최종 목표를 향해 고속 질주하는 이 정권을 보면 정말 무서운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는 공포감마저 느껴진다.

그렇다고 보수 세력도 밀리지는 않는다. 잔디광장으로, 체육관으로 몰려다니며 구국(救國)을 외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재자 유형의 리더를 갈망하는 분위기를 조장한다.

가난에서 만백성을 구했다는 박정희의 유령이 온 나라를 휘감고 있으며, 그 덕에 몇몇 정치인은 차기 지도자로 인기 상종가(上終價)를 치고 있다.

보수적 색채가 강한 세력일수록 불황의 심각성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부시 대통령의 당선을 마치 자기들이 투표한 후보가 당선된 것처럼 반가워한다.

보수 인사들 중에는 아예 ‘이런 나라에서 세금 내는 것도 아깝다’며 국적(國籍)까지 바꾼 사례도 있다.

이들은 노무현씨를 대통령으로 뽑을 정도로 수준 낮은 유권자에게는 민주화나 인권 같은 가치를 잠시 유보하더라도 강권형(强權型) 국가 경영이 필요한 위기국면이라고 오늘의 한국을 진단한다.

지나친 비유일 수 있으나, 이 나라는 마치 스탈린과 트로츠키가 시도했던 좌파(左派) 혁명을 꿈꾸는 극단(極端)과,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추진했던 우파(右派) 혁명을 꿈꾸는 극단 간의 전쟁터처럼 어수선하다.

좁게 보면 김일성-김정일 후계세력과 박정희 후계세력 간의 대리전 같기도 하다.

그러나 두 극단세력에게는 한강 둔치에서 솥단지를 내동댕이친 식당 주인들이나, 얼굴을 가린 채 생계대책을 호소했던 성매매 업소 종사자들과 노점상들, 그리고 취직이 안 돼 아직 대학 도서관에 머물러 있는 젊은 백수들의 굶주린 함성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스탈린이나 히틀러도 반갑지 않고, 김일성과 박정희도 반갑지 않다. 구국(救國)이나 개혁 구호도 넌더리가 났다. 당장 오늘 출근할 직장이 그립고, 지금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올 1명의 손님이 그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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