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북한인권법이 의회 상원에 이어 5일 하원을 통과함에 따라 우리 정부의 입장과 이 법안이 미칠 대(對)한반도 영향력에 새삼 관심이 쏠린다.

일단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4일 이 법안의 상원 통과에 대해 "미국은 우리(북)의 사회주의제도를 말살하려는 무분별한 단계에 들어섬으로써 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와 협상의 의미를 상실케 하고 있다"며 "이제 우리에게는 핵문제에 대한 6자회담은 고사하고 미국과 상종할 그 어떤 명분도 없게 됐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제4차 6자회담을 조기에 개최해 다소나마 진전을 거두었던 3차회담에서의 모멘텀을 이어가려던 참가국들의 노력이 당분간 성과를 얻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특히 ▲심리전 강화 ▲대북인권단체 지원 ▲탈북자 망명 허용 등을 골자로 한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에 대해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체제압박이 노골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미국의 향후 움직임을 관망하면서 위축된 입장을 보일 것으로 대다수 북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남북관계 역시 '대화 없는 시기'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북한은 동남아시아 제3국에서 탈북자가 대규모로 남한에 입국했을 때 "유인납치테러 범행이 미국이 `인권법안'이라는 것을 하원에서 통과시킨 것과 때를 같이해 감행된 사실에 주목한다"며 '응당한 계산'을 공언했다.

이 때문에 지난 8월 초에 무산된 제15차 장관급회담을 시작으로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이 불가피하게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관측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북한인권법의 실행과정에서 미 행정부와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대화한다는 입장이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나오도록 하는 것이 긴요한 만큼 이 법의 실행으로 인한 대북자극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법안의 미 상원 통과 직후 정부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지속적 관심 ▲국가별 대응방식의 전략적 선택 ▲화해협력을 통한 점진적 인권개선 등 북한인권에 대한 3대 입장을 정리했다가 최근 들어 6자회담과 남북관계발전에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입장을 추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인권법안의 확정으로 한반도 정세가 흔들리기는 하겠지만 남북관계를 완전히 뒤로 돌리는 정도의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정부측의 기대 섞인 분석이다.

정부 당국자는 "최근 북한이 6자회담과 남북관계 진전에 소극적인 것은 북한인권법안 뿐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 선거, 한반도 주변 미군 전력증강 등 다양한 요인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며 "미 대선 결과 등에 따라 북한도 움직이기 시작할 것인 만큼 북한인권법에 과도한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은 북한인권법이 확정된 가운데 미 대선이 끝날 때까지 남한과 미국, 일본과 대화를 미뤄둔 채 중국이나 러시아 등 주변 전통우방국가와 관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화 재개에 대비할 가능성이 있다고 그는 내다봤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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