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圭德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를 통해 ‘자주국방’을 화두(話頭)로 던졌다. 갑작스런 자주국방의 언급이 혹시라도 지난 50년 동안 한반도 안보를 지켜낸 한·미동맹의 가치를 폄하시키지나 않을까 많은 국민들은 불안해했다.

정부는 GDP 대비 2.8% 수준의 국방비를 3.2%까지 증액하여 10년 이내에 자주국방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을 밝혔을 뿐 아니라 한·미동맹의 강화는 물론 주변국과의 안보 협력의 바탕 위에서 자위적 방위역량을 확보하여 안보 불안을 제거하겠다는 ‘협력적 자주국방’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국방부도 이러한 원칙에 맞추어 2005년도 예산안을 요구했다.

그 규모는 금년에 비해 13.4% 증액된 21조4000억원 정도다. 그러나 부처별 조정을 마친 현재 정부는 2005년도 국방비를 GDP 2.9% 수준에서 묶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정부의 국방비 조정안(案)에는 ‘주한미군 재배치와 대체 전력 건설’을 위한 비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오히려 병력을 줄여서라도 국방비를 절약, 주한미군 재배치 비용과 대체전력 건설에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도록 강요하는 듯한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 걱정스럽다.

특히 주한미군의 감축 및 재배치 전력이 대부분 지상 전력일 뿐만 아니라, 북한의 대규모 지상군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상군 전력을 줄여 해·공군 위주로 전력을 보강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국민들을 설득하기에 부족하다.

병력을 줄인다면 그에 걸맞은 전력 증강이 반드시 필요하며, 현재 주한미군의 10대 주요임무 중 대화력전(對火力戰)의 능력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기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육군 7군단과 11군단의 해체라는 결정이 전력 증강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예산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선행된다면 이는 매우 우려할 만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지상군이 지나치게 많다는 통념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기동타격군 내지 신속대응군 체제로의 군사변환(military transformation)의 요구가 아닌, 구조적 모순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 차원에서라면 문제가 있다.

육군 대(對) 해·공군의 현격한 차이는 한국적 안보 환경에서 반세기간 축적된 결과이다. 이를 기득권 세력 대(對) 취약그룹 간의 형평성이라는 잣대만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특히 전력증강 사업은 해·공군의 전유물이 아니며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 무기체계와 기술개발, 운용시험, 생산 및 배치 등은 최소한 5년 내지 10년이 소요된다. 안보를 정치적 실험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곤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력 증강은 시기를 미룰 수 없다. 정부는 한국 안보의 미래를 다룰 큰 그림 속에서 구조조정이나 전력사업을 논해야 한다. 이는 행정수도 이전이나 과거사 문제보다 더 시급한 현실의 문제이며, 안보불안의 해소가 곧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심리적 요인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평화통일과 민족공조의 가치가 소중한 만큼 위협의 대상에 대한 준비 역시 철저해야 한다. 국가안보는 실수를 허용할 수 없으며, 기습전쟁을 일으켰던 당사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선의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국방 소요를 줄인다는 식의 ‘안보관’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

만약 국민들의 안보 불안만 완화시킬 수 있다면 국회가 직권으로 투자 우선순위를 조정, 한국군 전력 확보에 소요되는 필수 재원을 챙겨주는 것이 좋을 듯싶다. 안보란 태생적으로 신중한 사고(prudence)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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