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박해현기자】 프랑스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지난 15일자에 ‘거대한 거짓말의 나라에서(Au pays du grand mensonge)’란 제목으로, 4개면에 걸쳐 북한 특집을 실었다. 외국인 관광단 틈에 낀 기자는 남북 정상회담 발표 당일인 10일의 평양을 전했다.

‘발표는 엄숙했다. 도시의 모든 스피커가 주민들의 주의를 모으기 위해 세 차례 징을 울렸다. 평양 주민들에겐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발표 내용에)충격받은 거리의 사람들은 평소 입밖에 내지 않던 것을 완연하게 드러냈다. 그것은 깊은 안도감과 해방감이었다.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한 북한인은 우리에게 이렇게 털어놨다. “결국, 결국, 결국 우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당신들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지, 얼마나 많은 국고와 자원을 군사력 강화에 탕진하면서 그 나머지 전부를 파괴했는지 알 수없을 것이다. ”

남북회담 발표 며칠 전 비무장 지대에서 만난 북한 장교는 “김대중같은 민족 반역자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조국 통일이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 안내인을 통해서 말보로 담배 몇갑을 달라고 부탁했다. 자기 부하들에게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프랭클린 기자는 평양과 함북 지역 등을 둘러본뒤 북한을 ‘공산주의의 쥬라기 공원’이라고 단언했다. ‘공산주의 왕조, 살인적 기아를 은폐하기 위한 치장, 개인 숭배 의식, 냉전의 과대망상증, 끝장난 경제, 거짓말과 선전의 제국: 우리는 이념의 광기에 질식된 북한 여행에서 돌아왔다. 기괴하고, 비극적이고,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인상을 받은 채. ’

이 르포의 평양 인상기는 이렇다. “평양은 잿빛 건물과 슬픈 콘크리트의 세계였다. 멀리서 보면, 현대적 도시를 연상케한다. 가까이 가면, 5년전부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식량 원조를 받는 나라의 쇠락과 만연한 궁핍을 알아차리게 된다. 군대와 정권의 사치, 일부 외국인 전용 호텔에만 전기가 배정된 탓에 20~30층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전력 결핍은 거의 총체적이다.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한 겨울에도 난방시설을 사용할 수 없다. 반대로, 각 아파트에 설치된 선전 스피커는 쉬지 않고 떠든다. 붉은 신호등이 들어오지 않는 사거리에는 경찰이 한산한 교통 정리를 맡고 있다. 자동차는 뜸하지만, 공용 메르세데스 승용차는 부품과 휘발유 부족을 모른다. 평양 주민들이 하는 일은 3가지 뿐이다. 집단 노동, 4월15일 위대한 수령의 생일을 맞아 김일성광장에서 펼칠 무용 연습, 도처에 깔려있는 선전 간판의 제작과 수리. ”

리베라시옹은 사설에서 ‘자급자족 체제로 인해 북한 주민들은 20세기 후반기 최대의 순교자가 됐다. 벌받지 않았던 이 정권은 이제 죽어가고 있다. 평양 지도자들과 남한 대통령의 회담은 이를테면 그 종말의 자백인 셈’이라고 썼다. /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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