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첩보원이었다는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려 했죠. 국가와 한 약속이었고, 애국이라 믿었기에…. 그런데 국가가 그 약속을 깨고, 우릴 범죄자로 몰아가는 걸 참을 수 없었습니다.”

50년대 말, 강원도 동부전선 지역에서 북측 군사 정보 수집 임무를 수행했던 박수천(64)씨. 40년 넘게 말문을 닫았던 그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쳤던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고교 과정에 재학하던 1959년 5월, 동료 6명과 함께 1군 첩보대원으로 선발돼 이듬해 10월까지 1년 반 동안 휴전선을 넘나들었다. 그는 당시 상황을 꼼꼼히 적어 놓은 일기를 바탕으로, 최근 ‘우리의 조국은 대한민국이야’(행림출판)라는 책을 냈다. 이 책에는 6·25 전쟁 때 부모를 잃은 그가 첩보원이 돼 지옥 같은 훈련을 받은 뒤, 7차례 ‘사선(死線)’을 넘어 활동했던 상황이 담겨 있다.

박씨는 정부가 북파공작원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을 들어, 자신들의 존재를 공개한 것은 크게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세계 어느 나라가 적지를 넘나든 첩보원 신분을 공개하나요. 더구나, 우린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고 잠시 휴전한 상황 아닌가요. 우릴 드러낸 것은 남한이 휴전협정을 어겼다는 것을 공개해 북한을 도와주려는 좌파 세력의 배후 조종 때문 아닌가요.”

평생을 ‘대한민국 최고의 애국자’라는 자부심으로 살았다는 그는 첩보원들을 북파공작원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마치 살인자·범죄자 집단처럼 인식하도록 방치했다는 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대북 첩보원이었던 과거가 담긴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이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는 범죄자 출신도 아니고, 살인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왜 우리들의 가슴에 피멍을 만드는 겁니까.”

박씨는 말하는 도중, 복받쳐 오르는 감정 때문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아내에게도 외아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내는 그가 일본에서 중요한 국가 임무를 수행한다고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그가 대북 첩보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변에서 보는 눈이 차가워졌다. 미국에 있는 아들은 “너희 아버지 살인범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실미도 부대처럼 아주 일부에 범죄자 출신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대북 첩보원을 마녀사냥하듯 몰아가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건강이 나빠져 ‘귀가(이들은 군인이 아니기 때문에 제대가 아님)’한 그는, 몇 차례 회사 취직이 좌절되자 전국 문방구에 물품을 대주는 일을 했다. 이후, 골동품 매매에 뛰어들어 살림살이가 폈다고 했다.

박씨는 “돈 몇 푼 주고 명예회복시켜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면서 “내가 지킨 나라가 우리를 자랑스러워 할 때, 비로소 진정한 명예를 되찾게 될 것”이라고 했다./장일현기자 ihj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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