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의 최고 원로인 한경직(한경직·98) 영락교회 원로목사가 19일 오후 1시15분 별세했다.

▶관련기사 21·31면

최근 몇 년간 노환을 앓아온 한 목사는 지난 1월 초 서울중앙병원에 입원했으며 2월 말에는 상태가 호전돼 영락교회로 옮겨 요양해왔다.

한경직 목사는 1902년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나 정주 오산학교와 평양 숭실전문을 졸업하고 1926년 도미(도미),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했다. 1932년 귀국한 한 목사는 이듬해 신의주 제2교회에서 일선 목회자 생활을 시작했다.

해방 후 북한 지역이 공산당 치하에 들어가자 남쪽으로 내려온 한 목사는 1945년 12월 월남민들과 함께 ‘베다니교회’를 설립, 한국 최대의 ‘영락교회’로 키워냈다.

6·25가 끝난 후에는 재건된 숭실대 학장, 구호단체인 선명회 이사장, 장로교 총회장 등을 역임하며 60~70년대의 비약적인 개신교 발전을 이끌었다.

1972년 영락교회에서 은퇴한 한 목사는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회 총재,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현역에 있을 때보다도 더욱 활발히 활동했으며 이런 공을 인정받아 1992년 ‘종교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을 받았다.

한경직 목사는 지난 74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김찬빈(김찬빈) 여사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었다. 장례는 24일 예장 통합 총회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영락교회 선교관에 마련됐다. (02)2273-6301

/이선민기자 smlee@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