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발간될 국방백서에 '주적(主敵)' 표 현이 삭제될 것으로 보여 주적개념을 둘러싼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방부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군사, 경제, 사회 등 다방면에서 발전하고 있는 화해 분위기를 감안해 국방백서에 명시된 '우리 군의 주적은 북한'이란 표현을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개최한 데 이어 사실상 정례화된 장성급군사회담을 통해 서해 북방한계선(NLL)상에서 우발적 무력충돌을 막기 위한 함정간 핫라인이 가동되고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선전수단이 제거되는 마당에 주적 표현은 대결시대의 냉전적 사고에 불과하다는 군 안팎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군의 미래 청사진이 담긴 국방백서에 주적 표현을 삭제하더라도 장병 정신교육용 교재나 내부 문서에는 주적 개념을 유지한다는 게 국방부의 공식 입장인 것이다.

주적 표현은 1995년 발간된 국방백서에 처음 들어간 뒤 2000년도까지 유지됐다.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열린 특사교환을 위한 제8차 실무접촉에서 북측 박영수(2003년 사망) 대표가 "서울이 여기서 멀지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고 만다"는 공격적인 발언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의 발언은 6.25전쟁을 겪은 보수층을 중심으로 '남한의 주적은 누구인가'라는 논쟁에 불을 당겼고 군도 이런 여론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간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뒤 주적 표현 삭제 논란이 본격적으로 일었다.

중국과 일본 등 한반도 주변국들이 군비를 확장하며 노골적으로 작전반경을 넓히고 있는 현실에서 비록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북한이란 특정국가만을 지정해 `주적'으로 명시하는 것은 냉전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종석 사무차장도 지난 2001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을 때 이 연구소가 펴내는 정책연구서 '정세와 정책' 기고문에서 "평시 혹은 비전시에 공식적으로 주적이나 특정국가를 지칭해서 '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비합리적, 비전략적인 사고의 산물이다"며 주적 표현 남북관계 상황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또 내부적으로 중국을 '가상적'으로 지칭하고 있는 대만에서도 외부 문서상으로는 주적 개념을 사용치 않으며,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들을 평화협상의 대상으로 간주해 적대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 사례도 비판론을 뒷받침하는 이론적인 근거가 됐다.

이에 따라 국방부도 지난 2001년 국방백서에 명시된 '주적인 북한의 현실적 군사위협'이란 문구에서 '주적'이란 단어를 삭제하고, '북한', '적', '공산주의자' 등의 용어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4년 국방백서에 주적 표현이 빠지더라도 주적 논란이 모두 가시지는 않을 전망이다.

북한이 미국을 '원쑤'(주적)로 부르고 남한을 여전히 적대세력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노동당의 대남 적화혁명 규약을 개정하고 있지 않은 마당에 주적 표현 삭제는 장병 정신교육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가치관에 혼란을 줄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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