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소불위의 벤츠승용차


◇행사에 동원된 벤츠승용차들

개인이 승용차를 소유한다는 것은 북한주민들에게는 꿈같은 얘기다. 그나마 평양시민들은 고급승용차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지방사람들보다는 많다. 지방보다는 평양에 승용차가 더 많기 때문이다. 평양에 가면 승용차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차는 단연 벤츠다. 중앙당의 고위간부들은 거의 벤츠만을 타고 다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승용차번호판만 봐도 어디 소속인지를 알 수가 있다. 벤츠 가운데 앞번호가 216(김정일의 생일)인 차들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및 후보위원을 비롯한 최고위간부들의 것이다. 북한에서는 어떤 사람이든 타지방으로 갈 때는 여행증이 필수다. 승용차로 이동할 때도 시, 도, 군 인접에는 반드시 단속초소가 있다. 그러나 앞번호 216이 달린 벤츠는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새로 입대한 신병들이 멋모르고 이런 승용차를 멈췄다가 혼쭐이 난 사례도 많다.

북한에서 일반인들의 가장 인기 좋은 직업을 선택하라고 하면 아마 운전사일 것이다. 기차 외에는 별다른 운행수단이 없고 자동차가 많지 않기 때문에 운전사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다.

특히 교통수단이 빈약한 지방으로 갈수록 운전사 모시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기차역에서 멀리 떨어진 읍소재지 등을 가야 하는 산간벽촌에는 하루 내지 이틀정도를 기다려야 버스를 탈수 있으며 술, 담배 등 갖가지 뇌물이 버스운전사에게 건네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때 운전사동지라고 부른다. 동지는 흔히 상급자나 간부를 존칭해 부르는 말이며 일반적으로 동무로 통한다.

◆ 면허증 따기위해 치열한 경쟁


◇벤츠 다음으로 많은 일본제 승용차. 운행 도중 자동차를 수리하고 있는 운전수.

인기가 이러다 보니 운전사지망생은 많고 면허증은 국가에서 지정한 학교를 졸업해 시험에 통과해야만 받을 수 있어 운전사 되기도 수월하지 않다.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면 우선 고등중학교나 기관, 기업소의 기관장들에게 추천을 받아 자동차 양성기관에 입학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한다.

추천은 우선 자동자 운전조수로서 1년의 경력을 갖추어야 한다. 1985년 이후부터 휘발유가 부족해지자 지방의 자동차들은 거의 목탄차(목탄차)로 바꿔 버렸는데 목탄차는 운전조수가 없으면 운행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경력이 있어도 워낙 지원자들이 많기 때문에 해당 담당간부들에게 뇌물이 또한 필수다.

일단 자동차 양성소에 입학허가가 나오면 1년간 거기서 먹고 자며 합숙에서 집단생활을 하여야 한다. 양성기간 교육과정은 당정책, 자동차도로교통법, 자동차경영학, 운영학, 코스주행실습, 장거리실습 과정이다. 여기서 자동차경영과 운영학은 차의 구조장치와 역할, 그리고 수리 분야다.

자동차 엔진조립, 해체를 반복하며 자동차 정비를 자체로 완전히 할 수 있도록 숙련시킨다. 따라서 북한의 운전사들은 거의 자동차 박사 수준이다. 물론 많은 뇌물을 주고 이런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면허를 취득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어려운 수업과정을 거쳐야 한다. 양성소에서 마지막 관문은 누가 뭐래도 운전실습이다. 단거리 운행은 보통 1주일정도이며 장거리 실습은 5~6개월 정도로 실시된다.

가장 어려운 관문은 장거리 실습이다. 예비 운전사들은 자동차를 몰고 평양에서 함흥을 잇는 북한의 중부도로를 통과해야 한다. 여기에는 맹산령과 같은 최악의 코스가 있는데 이 고개를 넘는 초보생들은 거의 목숨을 걸다 시피 한다. 도로가 좋지 않고 자동차 설비가 낙후되어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겨울철에는 험한 고개를 넘으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천길 낭떠러지가 밑에 있고 길은 뱀처럼 꼬불꼬불한 맹산령은 베테랑급 운전사들도 넘기 주저하는 고개다. 매해 대형교통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이 가운데는 운전실습생들에 의한 사고도 상당수 포함된다. 일단 맹산령을 넘으면 운전사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되며 최종 시험에 통과하면 드디어 운전면허증을 갖게 된다.

일반인들과 별도로 인민무력성과 인민보안성(경찰)에도 자동차운전수양성소가 있다. 교육코스는 거의 비슷하며 군의 경우는 민간보다 6개월 정도 앞당겨진다고 한다. 자동차가 없어 면허증을 갖고도 보통 3년 정도는 대기하고 있거나 조수로 따라다녀야 한다.

시험합격률은 80~85% 정도이다. 시험감독관에게 상부에서 20%정도는 탈락시킬 데 대한 지시가 있어 그대로 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면허시험에 합격하면 4급 면허증을 발급받으며 지정된 자동차(승리 58형 트럭)만 몰 수 있다. 사고 없이 4년이 경과하면 3급면허가 주어지는데 25명 이하의 중형버스나 5t 트럭을 몰 수 있다. 다시 3년이 경과하면 2급을 받고 4년 정도가 지나면 1급을 받는데 1~2급은 벤츠승용차와 같은 고급승용차를 몰수 있다.

자동차 면허증은 수리정비자격증도 함께 주어진다. 정비자격증은 면허증과는 달리 급수가 반대로 되어 있다. 가령 면허 1급의 소유자면 정비 자격 7급이다 제일 하급면허증인 4급을 받아도 정비자격증 4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비사로서도 중간 이상의 실력은 인정되는 셈이다. 보통 운전사들은 운전을 하지 않을 때에는 정비사로도 곧바로 투입될 수 있는 우수한 인력들이다.

남한에 넘어온 탈북자 중에는 운전사출신들이 더러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우수한 운전사들이 남한의 운전면허시험 필기에서 떨어지는 것에 대해 자존심 상해 한다. 시험문제의 용어가 상이하고 문제에 함정이 많아 이런 시험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제 실력이 나올 리 만무하다. 물론 실기시험은 만점 합격한다.

/강철환기자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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