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남북정상회담 발표를 듣고 나는 당장이라도 북한에 계신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설렘에 밤을 꼬박 지새웠다. 나의 아버지는 1987년 1월 15일 백령도 부근에서 북한경비정에 의해 납치된 동진호 어로장(최종석·55)이다. 동진호는 어선이기에 당시 북한은 간단한 조사만 끝내고 그해 2월 선원들을 송환하겠다는 의사를 우리 정부에 통보했다.

그러나 그 즈음 김만철(김만철)씨 일가족이 한국에 망명했다. 그러자 북한은 즉각 동진호 선원 12명과 김씨 일가 11명을 맞교환하자고 제의했고,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이곳에서 김씨 가족을 환영하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펼쳐지는 동안 내 아버지는 북한에서 남한 간첩으로 몰려 모진 고통을 받아야 했고, 현재는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고 작년 1월 국가정보원은 발표했다.

87년 당시 아버님은 유난히 바다로 나가기 싫어하셨다. 아마도 나쁜 예감 때문이셨으리라. 동진호는 일이 고되기로 유명한 저인망 어선으로 태풍주의보가 내리기 직전까지 파도와 싸우며 고기를 잡는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험난한 파도와 싸우다 북으로 간 무고하고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달 아버지의 마지막 행적을 찾아 백령도에 갔다. 그곳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백령도 사람이 납북자들에 대해 말하기를 얼마나 꺼려하는가였다. 장산곶이 잡힐 듯 가까운 백령도 인근에는 납북된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안개라도 끼는 날 자칫 잘못 했다가는 배가 북쪽으로 가 있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렇게 북으로 간 사람도, 돌아온 사람도 이쪽 저쪽에서 고통당할 수밖에 없었다. 생업의 바다가 아니라 이념의 바다, 분단의 바다, 그리고 원한의 바다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백령도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납북자에 대해서 말하기를 꺼려하는 이유를 알고 나서 나는 그동안 이 땅에 왜 ‘납북자문제’라는 것이 덮여져 있어야만 했는지 까닭을 알게 되었다. 얼마전 이근안씨 재판에서 ‘납북어부 고문혐의’가 사실로 인정되었듯이 수많은 납북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송환자들이 숨죽이고 있어야만 했던 슬픈 역사가 이 땅에 있었던 것이다.

460426-1095819. 아버지의 주민등록번호다. 아버지는 여전히 호주이고, 대한민국의 법률은 그를 아직도 국민으로 인정하고 있다. 북한으로 가시는 우리 대통령이 이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북한에서는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을 위해서 하루가 멀다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억울하게 억류된 내 아버지와 같은 가난한 국민들은 남에서도 북에서도 따돌림당해야만 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더구나 비전향 장기수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영웅이나 혁명가일지 모르지만 남한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반국가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납북어부들은 가족을 위해 험한 일을 했던 것 말고 다른 무슨 죄가 있어 이다지도 외면당하는지 목이 메일 따름이다.

얼마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가톨릭이 지은 과거 죄들에 대해 용서를 구함으로써 전 인류의 화해에 이바지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 정부나 북한 당국에서도 1987년 납치되어 정치의 희생자가 된 동진호 선원들에게 죄를 고하는 고해성사가 시작되어야 한다.

일본에서 자국민의 납치문제를 수교의 조건으로 내걸고 협상에 임하고 있듯 이번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생이별로 고통당하고 있는 동진호 선원들의 송환문제를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 주길 어부의 딸인 나는 눈물로써 고대한다.

/최우영 납북자가족모임 총무·동진호 어로장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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