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잣대로 삼는다면 DJ는 승자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42%의 국회의석을 손에 거머쥐었다. 지난 15대 총선에 비하면 원내 지분을 무려 16%나 끌어올린 것이다. 심지어 유신 때 그 기본 틀이 갖추어진 반(반)호남 포위망을 이제야 뚫었다는 설렘에 젖을 만한 성과이다. DJ는 15대 총선 때 잃었던 서울·경기 지역을 탈환하였는가 하면, 충청권 내에서 자민련에 버금가는 의석수를 확보했고 강원과 제주에서 한나라당을 제쳤다.

그러나 DJ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만족할 수는 없다. 대통령은 현재 속에서 미래를 책임지기 때문이다. ‘어제’ 대신 ‘오늘’에 시선을 모으면 DJ는 오히려 민심을 추슬러야 한다. 총선결과는 DJ가 갖고 있는 잠재적 지지층과 그 한계를 동시에 확인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DJ는 이번 총선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명분을 다 동원하였다. 이미 작년 하반기에 ‘새 피 수혈론’을 주창하고 386세대를 끌어들이면서 야당보다 먼저 세대교체에 불을 당겼는가 하면, 낙천·낙선운동을 펼치는 총선연대의 편에 서고 후보자 신상을 공개하려는 선관위의 손을 들어주면서 선거개혁을 밀어붙였다.

게다가 충청권 출신의 야심가 이인제 전(전) 대선주자를 선대위원장에 임명하면서 민주당의 호남색채를 희석시키고 지역성 극복의 모양새를 갖추려 애썼다. 한편 총선 사흘 전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발표해 민주당을 민족화해의 기수로 부각시키려 하였다.

DJ는 한국인이 갈망하는 세대교체·선거개혁·지역타파·남북화해의 명분으로 민심을 얻고 야당을 죄어들어가려 한 것이었다.

그러한 명분론은 총선기간 내내 야당을 공론의 장에서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회창 총재가 명분론을 ‘야당 죽이기’로 몰아세우면 몰아세울수록 오히려 한나라당 후보가 부적격 시비에 더 휘말렸고, 김종필 명예총재가 ‘보수’의 깃발을 치켜들고 ‘음모론’으로 맞서면 맞설수록 자민련이 선거판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몰렸다.

정상회담이 DJ판(판) 북풍(북풍)이라는 야당 수뇌부의 비판을 대놓고 지지하는 시민은 더더욱 있을 수 없었다. 민족화해라는 절대적 명제를 거스르는 냉전주의자로 낙인찍히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그러나 총선결과는 여소야대이다. DJ가 명분을 선점한 상황에서마저 한나라당은 과반수 의석에는 4석이 모자라고 민주당 의석보다는 18석이나 많은 133석을 긁어모았다. 그만큼 반DJ 정서는 뿌리가 깊은 것이었다.

사실 명분론에 밀려 나온 침묵이 동의를 의미한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적지 않은 이가 총선기간 내내 ‘사석’에서는 불만을 내뱉었다. DJ식 총선전략은 단순히 명분을 무기로 삼아 의석을 확보하려는 세몰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오는가 하면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응한 대가로 우리가 내놓아야 할 선물이 무엇인가를 놓고 우려의 소리가 심심찮게 들렸다. 그러한 비판과 우려에 지역감정이 가세하면 곧 DJ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되고 말았다.

그러한 견제심리가 얼마나 강렬한가는 한나라당조차 총선 전에 몰랐다. 명분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수면 아래에서 악화되던 불만과 비판은 선거날에야 비로소 표로 나타났다. 결국 DJ는 공세적 자세에서 명분론을 펼치다 타지역을 결속시켰고 국민여론을 양극화시켰다. 그 피해는 역설적이지만 동(동)과 서(서) 사이에 낀 자민련의 몫이었다. 하지만 혜택은 민주당이 독점하지 못하였다. 한나라당은 영남표에 충청표 일부를 보태 1등 자리를 지켰다.

DJ는 더이상 명분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 이인제 선대위원장을 앞세우면서 자민련을 공중분해하고 의석을 늘리는 인위적 정계개편은 더더욱 위험한 일이다. 누가 옳은가를 가리는 명분싸움에는 대화가 있을 수 없고, 누가 먼저 의원을 빼가느냐 하는 게임에는 공존이 있을 수 없다. 대화가 없고 공존이 불가능하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에 임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지금 DJ가 해야 할 일은 한나라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가 ‘사석’에서 주고받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영남권 민심을 추스르는 것이다.

/김 병 국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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